[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방문동거 비자, 또 하나의 차별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국은 ‘혈통’에 따라 외국인의 법적 대우를 다르게 하는 전세계 수십개 나라 중 하나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본국 주민 대비 재외동포 비중이 가장 큰 사회다. 재외동포 총수는 한반도 총인구의 10% 정도 되는데, 이는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보다 훨씬 크다. 독일, 이스라엘, 튀르키예, 아르메니아처럼 혈통주의 원칙에 입각해 외국인을 대하는 국가들은 대개 커다란 해외 디아스포라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해외 한인들이 한국에 와서 받는 ‘특별 대우’는 광의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속한다.
한데 자세히 보면 중국이나 옛 소련의 혈통적 코리안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한국에 와서 받는 대우는, 혈통주의 원칙을 인정하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디아스포라의 귀환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은 물론 튀르키예나 아르메니아,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은 재외동포가 귀환하여 국적 취득을 신청하면 바로 국적이 부여된다. 독일이나 핀란드는 옛 소련 등지로부터 귀환하는 동포에게 언어시험 등을 치르도록 하지만, 귀환하는 동포에게 국적을 부여한다는 대원칙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이나 옛 소련 출신 동포들이 한국에서 받는 것은 국적이 아닌 재외동포 비자(F-4)나 방문취업 비자(H-2) 정도다. 특히 후자의 경우 국내 체류기간은 최대 4년10개월로, 그 기간을 채우기 전에 출국했다가 다시 비자를 받아야 재입국할 수 있다. 즉, 한국이 선진권 바깥 국가 출신 동포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시민공동체 멤버십이랄 수 있는 ‘국적’이 아니라, 대개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의 고용과 신분적 불안을 뜻하는 ‘방문 취업’ 아니면, 잘돼야 ‘재외동포’로서의 (정착이 아닌) ‘체류’다.
대개 혈통주의 원칙에 입각한 재외동포에 대한 국적 부여는, 역사적 정의 확립 차원에서 이해된다. 예컨대 옛 소련에서 독일인이나 핀란드인, 유대인 등은 강제이주나 심한 차별을 받았기에, 독일이나 핀란드, 이스라엘 등 고소득 사회가 된 ‘역사적 조국’들은 ‘피해자 동포’에게 국적을 부여하면서 ‘역사적 빚’을 청산한다. 사실 수난을 이야기하자면 고려인들이 옛 소련에서 겪은 고초는 독일인이나 유대인, 핀란드인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1937년 고려인 18만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면서 2500명이 숙청, 체포, 처형된 게 대표적이다. 한데 고소득 사회가 된 그 ‘역사적 조국’ 한국은 그들에게 역사적 정의를 회복시켜주지 않고, 그들을 시민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체류자,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담당할 ‘인력’으로 간주해 다룬다. 결국 그들은 옛 소련에서 겪었던 수난, 그리고 소련 해체의 충격 등에 이어 한국에 와서도 차별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그에 더해, 그들의 비고려인 가족은 이중으로 차별받는다. 그런 가족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옛 소련이나 그 후계 국가에서는 이민족 사이 결혼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도심지역은 그 비중이 높았는데 이미 1980년대 대부분 고려인은 도시민이었다. 러시아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린 고려인 문호 아나톨리 김의 배우자도 러시아인이었고,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옛 소련의 스타 시인이자 록 가수 빅토르 최는 어머니와 부인 모두 러시아인이었다. 만약 그 가정이 지금 동포로서 한국에 이민 온다면 대개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아야 한다. 혈통주의가 가장 철저한 이스라엘도,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의 비유대인 배우자에게 5~7년 이내에 이스라엘 국적을 준다. 한데 한국에서 아나톨리 김이나 빅토르 최의 배우자가 받았을 체류 자격은 ‘시민권’도 ‘체류 권리’도 아닌 ‘방문’일 뿐이다.
비고려인 배우자들이 받는 방문동거 비자의 가장 큰 문제는 합법적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옛 소련이나 중국 등으로부터 재외동포 비자나 방문취업 비자로 국내에 들어오는 동포 가정 중에는 성인 가족 중 한명이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중상층이나 상류층은 별로 없다. 대개는 살림이 넉넉지 않은 경우들이기에, 배우자 두명 모두 일하는 맞벌이는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일을 못하게 되면 생계 곤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 몰린 방문동거 비자 보유자들이 느끼게 될 좌절감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가?
물론 그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절 근로가 법적으로 가능한가 하면, 특별히 지정된 일부 인구감소 지역에서 ‘지역특화형’ 체류 자격으로 단순노무에 종사할 수도 있다. 한데 지정 지역 목록을 보면 대부분은 농촌지역인데, 한국에 와 있는 비고려인 가족들 수천명의 압도적 다수는 도시 출신이다. 그들은 농촌에서 단순 업무를 하고 싶어도 쉽게 하지 못할 것이고, 그 고려인 배우자들의 직장 역시 거의 도시에 있다. 그들은 ‘역사적 조국’에 돌아와서 이산가족이 돼 생활해야 한다는 말인가?
중국이나 옛 소련에서 오는 동포들을 같은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체류자’로 묶고 그 이민족 배우자들에게 노동할 권리도 주지 않는 이민관리 정책은, 한국 관료집단이 쉽게 통제하지 못할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와 다른 타자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그 기반으로 한다. 특히 이민족 배우자의 취업활동 금지는 국제인권표준을 위반하는 노골적 종족 차별일뿐더러, 갈수록 이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구감소의 시대에 맞지도 않는 정책이다. 귀환하는 재외동포와 그 가족들을 모두 같은 한국인으로 수용·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다민족 사회’를 건설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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