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공간이 곧 경전” 옛집 속 미학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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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그중에서도 오래 남아 있는 집들은 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동시에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있다는 인상을 안긴다.
두 건축가는 "옛집을 만나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자, 영원한 현재를 살며, 집의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라며 "그 집들은 정지해 있어도 무척 강한 움직임이 있고,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경지를 이룬 우리 문화를 상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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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택·사찰 등 32곳 순례
법천사지·선교장·종묘 발걸음
“없음은 가장 강력한 존재 방식”
집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그중에서도 오래 남아 있는 집들은 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동시에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있다는 인상을 안긴다. 집은 어떤 생각을 가진 거대한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조상들은 옛부터 마당 한 가운데 나무를 들여놓지 않았다. 네모난 마당에 나무가 들어가 있는 형상은 빈곤할 곤(困)자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대문에서 바라봤을 때는 한가할 한(閑)이 된다. 의미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채광과 온습도 유지에도 부정적이다.
임형남·노은주(원주 출신) 건축가 부부가 쓴 ‘집의 미래’는 한국의 오래된 집 15곳과 사찰 17곳의 순례기가 담겼다. 부부는 강릉 선교장, 원주 법천사지·흥법사지, 양양 진전사지 등 강원의 옛집과 사찰, 폐사지를 비롯해 종묘, 운현궁, 소수서원, 통도사, 해인사, 부석사, 화엄사, 선운사 등 전국 곳곳을 누빈다. 전통 건축에 담긴 동양 사상은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이 세상에 명당은 없거나 혹은 모든 땅이 명당이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 맞는 어떤 땅이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맞는 땅을 골라서 그 위에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편안함 속에서 자신의 역량이 배가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집 가운데 가장 큰 건축물은 선교장이다.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 집 식구들은 10대에 걸쳐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방의 갯수도 일반 주택 한계치인 99칸을 넘어서는 102칸이다. 하인의 집까지 합치면 모두 300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1756년부터 200년간 차근차근 지어진 이집에 대해 저자들은 이곳에서 위계가 없는 다양한 공간감을 느낀다. 수평적 무한성과 공간감을 안기는 종묘에 대해 한국 건축 미학의 완결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인상깊다.
텅 비어 있음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대목이 자주 읽힌다. 건축가에게는 공간이 곧 경전이다. 진전사지에는 크게 비어 있는 ‘태허’의 미학이 있다. 너른 들을 품거나 산들이 에워싼 풍광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나오는 탑과 부도가 절의 경계를 보여주며 묘한 인상을 안긴다.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이 빈터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앉아있는 법천사지에서는 시간이 차려놓은 성찬을 즐길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없다. 부재의 존재, 없음은 가장 강력한 존재의 방식이다.
두 건축가는 “옛집을 만나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자, 영원한 현재를 살며, 집의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라며 “그 집들은 정지해 있어도 무척 강한 움직임이 있고,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경지를 이룬 우리 문화를 상징한다”고 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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