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충격 빠트린 '베트콩 대공세'…닮은 이스라엘, 변수는 장기전
서방 전문가 사이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다툼이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8년 1월 말 북베트남의 ‘구정(뗏) 대공세’ 이후 양상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장기전으로 흐르면 이스라엘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처럼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측은 50년 전 아랍-이스라엘 전쟁(욤키푸르 전쟁) 때처럼 초반의 기습 공세를 이겨내고 하마스 소탕에 성공하길 기대하지만, 상황을 오판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니엘 토마스 레이던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11일(현지시간) 미 폴리티코의 유럽판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사태는 1968년 구정 대공세와 역사적인 유사점이 있다”며 “이스라엘은 (미군처럼) 단기간에 군사적으로 승리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구정 대공세 이후 (미국 사회가 겪었던) 정치적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패 작전이지만, 미국에 후폭풍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는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유리하던 전황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인민해방전선(베트콩)과 함께 휴전을 일방적으로 깨고 설 연휴 첫날 8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해 남베트남 전역을 동시다발 공격했다. 이후 8개월간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투가 계속되면서 민간인 1만4000여명이 숨지고 2만4000여명이 부상했다. 남베트남군과 이들을 지원하는 미군, 한국군, 호주군, 태국군도 9078명이 전사했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다.
구정 대공세 상황은 이번 사태와 유사한 점이 꽤 있다. 미 사사지 타임은 “휴일 아침에 한꺼번에 모든 곳에서 발생했고, 게릴라 세력이 예상치 못한 능력을 보여줬으며, 훨씬 우세한 군대를 잠시 압도했고, 수년간 지속된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에 도전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두 사태를 비교했다.
주목할 것은 이후의 역사다. 기습 대공세에 나섰던 북베트남 측은 큰 사상자를 냈고, 정작 목표했던 영역 확장엔 실패했다. 또 미군이 초토화 작전 등 대규모 반격에 나서면서 군사거점을 상실하는 등 피해가 갈수록 불어났다. 그래서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작전”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미국에 불어닥친 후폭풍이었다. 당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던 CBS 간판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가 구정 대공세 소식을 전하며 “(베트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라고 탄식할 정도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던 미국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급기야 크롱카이트는 베트남까지 방문해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미국민에게 전했다.
결국 정치적으로 부담을 느낀 린든 존슨 대통령(민주당)은 1968년 대선에 불출마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공화당)이 취임한 이후에도 미국은 북베트남 폭격을 확대하는 등 전세를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미국 내 들불 같이 번진 반전 여론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개입한 지 9년 만인 1973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2년 뒤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민심 결집해도, 장기전이 변수
토마스 교수는 이처럼 구정 대공세가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을 상기하며 "(이스라엘에서도) 유사한 정치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스의 잔인한 공격과 참담한 피해 소식에 당장은 이스라엘 국민이 결집하는 모습이지만,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책임론이 커질 것이란 진단이다.
척 프레일리치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 부위원장도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하마스 깃발에 대한 단기적인 결집은 항상 있었다”며 “하지만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정치적 파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치적인 반발 조짐도 보인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내에서조차 하마스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을 정도다. 일례로 이스라엘 육군 대변인인 리처드 헤흐트 중령은 개전 초기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좋은 질문”이라며 수긍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다. 우파 매체인 예루살렘포스트도 8일 사설에서 “전투가 끝나면 정치적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고 꼬집는 등 현지 언론 반응도 비판적이다.
토마스 교수는 “올해 초 (자신의 부패 혐의를 덮기 위한 것이란 의혹이 있는) 네타냐후의 사법개혁 계획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진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는 이미 취약한 정부의 권력 장악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네타냐후의 ‘우리는 전쟁 중이며 승리할 것’이란 주장은 군사적으로 정확할 뿐, 정치적으론 근시안적”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구정 대공세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생각을 바꾼 것처럼 궁극적으로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충격파가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국민에게 확신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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