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물가, 성경에 적힌 것 아냐”… 美서 고개드는 목표 상향론
“‘물가 상승 2%’ 목표가 성경에 적혀있진 않습니다.”
최근 미국의 정치권과 경제학계 일각에서 물가 목표를 현재의 ‘2%’에서 ‘3%’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물가 목표 2%’를 달성하기 위해 너무 강한 긴축을 해서 경기를 고꾸라트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 부차관보 출신인 로 칸나 민주당 하원 의원은 지난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물가상승률 2% 목표는 과학(science)이 아니고, 정치적인 판단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수치(2%)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것이 그런 판단을 위한 올바른 방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런스 볼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최근 “물가 목표가 3~4%로 상향된다고 해서 경제가 실질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2021년 3월 2%를 돌파한 이후 2년6개월 넘게 목표보다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작년 6월엔 41년 만의 최고인 9.1%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작년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무려 5.25%포인트나 올렸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률이 2%로 낮아질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연준이 보는 물가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의 상승률은 8월에 3.9%였다. 물가를 더 낮추려면 연준은 금리를 더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경제를 옥죌 거라는 불안이 ‘물가 목표 상향’ 주장을 낳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시작한 ‘2% 룰’
‘물가 목표 2%’라는 규칙은 언제 처음 생긴 것일까. 전문가들은 34년 전인 1989년 뉴질랜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세계 최초로 물가 목표제를 도입하면서 물가 목표를 2%로 세운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어 캐나다, 영국, 일부 유럽국이 이를 도입했고, 미국도 2012년부터 이와 같은 목표를 공식 채택했다. 미국의 ‘목표 상향론자’들은 ‘2%’란 숫자는 외국의 전례를 따른 것일 뿐, 심도 있는 연구 결과로 나온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연준은 1990년대부터 이를 비공식적 목표로 삼아왔다. 1996년에 열린 연준 내부 회의에서 당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가격 안정성을 목표로 삼자”고 말하자, 당시 회의 참석자인 재닛 옐런 이사(현 재무부 장관)가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하다며 2%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다른 회의 참석자들이 동의해 이후 비공식 목표가 됐다고 한다. NYT는 당시 연준이 이를 공식화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린스펀 의장이 룰에 묶이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목표제 자체 붕괴 우려” 반대론
반면 “목표 상향이 물가를 더 높여 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란 반대론도 거세다. 중앙은행이 목표를 높이는 것 자체가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이 기대가 실제 물가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한번 설정된 목표를 바꾸면 물가 목표에 대한 신뢰가 깨져 앞으로 물가 안정이 힘들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는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결국 어떤 목표도 신뢰할 수 없다고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연준도 이런 이유로 현재 물가 목표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현재 한국의 물가 상승률 목표도 미국과 같은 2%다. 한국은행은 1998년 ‘물가 목표 안정제’를 도입한 이래, 특정 상승률이나 범위를 설정해 목표로 삼아왔다. 2000년대 초반엔 목표가 3%였던 적도 있지만, 2016년부터는 줄곧 2%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선 ‘물가 목표 상향’ 논의가 미국만큼 활발하진 않다. 하지만 고금리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 그런 주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 ‘2% 룰’이 정교한 이론에 근거해 탄생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최근 수년간 이 규칙에 근거해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가 형성됐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물가 목표에 변동을 주는 것은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미 연준은 다양한 물가 지표 중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PCE 물가는 소비자물가보다 포괄 범위가 넓어 상승률이 다소 낮지만, 추세는 비슷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수해복구 봉사 중 쓰러진 60대, 3명의 생명 살리고 떠나
- 강기정 광주시장 “내년 확장재정으로 민생 살리고 시민 소비 그릇 키우겠다”
- 한미 그룹 경영권 분쟁 종식 수순...임종윤 지분 5%, 4인 연합에 넘긴다
- 국수본부장, 검찰 압수수색에 “위법 행위”...준항고 제출
- “강원랜드, 단속 요원입니다”… 성인PC방 불법 환전 협박범 붙잡혀
- 정몽규 “FIFA랭킹 10위권 진입...2031 아시안컵·2035 여자월드컵 유치하겠다"
- Seoul aims to host 2036 Olympics with a budget-friendly approach
- KIA, ML 88홈런 타자 위즈덤 영입 ... 10구단 외인 계약 마무리
- 김형두, 부친상에도 헌재 회의 나왔다...”포고령을 증거로 재판 준비”
- 공학한림원 신입 회원 명단 공개...조주완 LG전자 사장 등 정회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