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선거 전 ‘산 쪼개기’…“내 편 만들기 꼼수” [주말엔]
■ '조합장 선거' 앞두고 '산 쪼개기'로 지분 공유
경남의 한 섬에 있는 330m 높이 야산입니다. 이 산 중턱에는 만 2천여㎡ 규모 임야 1필지가 있는데요. 지난 3월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당선된 이 지역 산림조합장이 2006년에 사들인 임야입니다. 그런데 토지 등기부 등본을 보니, 땅 주인이 25명 더 있습니다. 이 조합장은 조합장 선거를 수개월 앞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자신의 임야 지분을 쪼개, 지인 등 20명과 임야를 공유했습니다.
임야를 나눠 가진 사람들은 각각 331㎡(약 100평) 정도의 작은 면적을 가졌는데요. 등본을 보니 임야 지분 거래액은 한 명당 백만 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직접 산으로 올라가 해당 임야를 확인해 봤습니다. 잡풀이 무성하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땅에 어떠한 임업 경영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왜 쓰지도 않을 임야를 나눠 가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땅을 산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 공유자는 길도 없는 산 속에 집을 짓기 위해 지분을 나눠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땅을 보러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와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공유자는 임야를 가지고 있으면, 산림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면세유 구매 등 조합원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두 공유자 모두 임업 경영과 관련 없는 목적으로 쪼개진 임야를 사들인 겁니다.
■ 해당 산림조합 이사, 30명에게 공짜로 지분 증여
이 산림조합의 현직 이사가 가진 임야 14만 7천여 ㎡도 비슷한 시기에 주인이 30명 더 늘었습니다. 이 이사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지분 일부를 줬고, 배우자는 지난해 7월부터 한 달 동안 지인 30명에게 임야 3백여㎡씩 증여했습니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과 아무런 대가 없이 임야의 지분을 나눠준 겁니다.
재산권 행사가 힘들어 토지의 지분을 공유하지 않는 게 통상적인데,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매매와 증여를 통해 지분 공유가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은 조합장 선거와 관련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조합장은 2021년 해당 산림조합장 재선거에서 당시 당선자와 단 10여 표 차이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다음 조합장 선거를 위해 미리 표를 확보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 불법 아닌 '산 쪼개기'…제도적 허점 이용한 '꼼수' 반복
조합장과 이사 측 임야를 받은 50명 가운데 36명은 지난 3월, 제3회 동시 조합장선거 직전 해당 산림조합에 가입했습니다. 해당 산림조합에 가입하려면 300㎡(약 90평)의 임야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요. 산림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한 겁니다. 이들은 산림조합의 조합원이 돼 조합장 선거 투표권을 얻었습니다. 취재진은 조합장과 이사 측에 산림을 나눠 가진 이유와 조합장 선거의 관련성 등에 관해 물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대답만 반복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산 쪼개기' 행위가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반복됐다는 것입니다. 산림조합법이 바뀌기 전인 2021년 4월 이전에는 임야 1㎡만 가지고 있어도 산림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 선거만을 위한 '허수 조합원'이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사실상 임업 경영이 불가능한 작은 임야 지분만 갖고 있더라도 조합원이 돼 조합장 선거 투표권을 가지고, 임업용 면세유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었던 건데요.
이런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경남 양산에서는 4천8백여 ㎡(천4백 평)의 임야 1필지를 9백여 명이 나눠 가졌습니다. 이 가운데 830여 명이 지역 산림조합에 가입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작 5㎡의 작은 지분만 갖고도 조합원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당시 신규 조합 가입자들은 해당 산림조합 전체 조합원의 45%를 차지했는데, 당연히 조합장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산 쪼개기' 행위가 조합장 선거의 공정성을 해친다고 줄곧 지적받아 왔습니다.
■ "산 쪼개기는 매표 행위"…자제 권고에도 못 막아
2020년, 당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이던 최인호 국회의원은 산림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합장 선거철마다 벌어지는 '산 쪼개기' 행위가 '매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산의 지분을 쪼개 산림조합에 가입시킨 뒤, 조합장 선거의 투표권을 주는 건 자칫 조합장 선거에 나가려는 후보들의 '내 편 만들기'에 악용될 수 있어 선거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사 결과, 전국의 임야 50여 곳의 지분을 나눠 가진 6천3백여 명이 '허수 조합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산림조합중앙회도 '산 쪼개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해 왔습니다. 산림조합중앙회는 10여 년 전, 이런 편법적인 방법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어 산림조합 이사회에서 지분 공유자들의 가입을 거부할 사유가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받았습니다. 산림조합중앙회는 이 법적 자문을 지역 산림조합에 안내해 왔습니다. 그러나 산림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산을 쪼개 나눠 갖지 말 것을 권고하지만,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 "산주의 산림조합 가입 요건 강화해야"
산림조합중앙회의 자제 권고에도 '산 쪼개기' 행위가 계속되자 국회는 산림조합법을 고쳤습니다. 이에 따라 2021년 4월부터 최소 300㎡ 이상 임야를 갖고 있어야만 산림조합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요. 하지만 올해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된 현직 조합장과 이사의 '산 쪼개기' 사례처럼 법 개정 뒤에도 여전히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해 조합에 가입시키는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임야를 가진 사람, 산주의 산림조합원 가입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홍석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임업 경영을 하지 않고, 단순히 임야만 갖고 있는 사람도 산림조합원이 될 자격을 갖는 건 조합원의 임업 경영에 도움을 주려는 산림조합의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교수는 산주도 최소한의 임업 경영을 해야 산림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홍 교수는 산림조합의 한정된 예산으로 실제 산림을 가꾸는 조합원들과 허수 조합원들이 동등하게 혜택을 받게 된다면 선량한 조합원들의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임업인이 산림조합에 가입하려면 ▲3ha 이상 산림의 임업 경영 ▲1년 중 90일 이상 임업 종사 ▲임산물 연간 판매액 120만 원 이상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농업인도 농협 조합원이 되려면 ▲천 ㎡ 이상 농지 경작 ▲1년 중 90일 이상 농사나 일정 두수 이상의 가축 사육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임야만 가지면 산림조합원이 될 수 있는 산주에 비해 조합 가입 요건이 더 까다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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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기자 (c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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