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000명 떠났는데 카르텔 몰고 예산도 삭감...출연연 인재 이탈 속도 붙나
처우·연구환경 악화된 출연연…인력 이탈 우려
출연연 단체들, 대응방안 논의…집단행동 예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내부 커뮤니티에 이달 초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작성자는 출연연을 퇴사하는 40대 초반 선임연구원이었다. 이 선임연구원은 부푼 꿈을 안고 출연연에 입사할 당시부터 현장 연구자로 어려움을 겪다 퇴사를 결심한 지금까지의 일을 차분하게 적었다.
이 선임연구원은 “내부 구성원은 인격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모두 훌륭하다”면서도 “처우와 지적 만족, 워라밸(Work-life Balance) 모두 장점을 잃은 게 사실이고, 주변을 보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성과를 낸 우리 연구원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안타까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출연연의 인력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을 20% 삭감하면서 출연연 연구자들의 동요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예산 삭감으로 신진연구자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여 인력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출연연 연구자 단체들은 R&D 예산 삭감에 대응해 집단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23일 과학계에 따르면 전국과학기술노조와 전국공공연구노조,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등 출연연 단체들은 정부의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 절차에 돌입한다. 단체들은 대응 방안 논의 후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정상철 과기노조 단체교섭국장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인건비는 건들지 않겠다더니 연구수당처럼 연구자 처우에 직결되는 부분을 은근슬쩍 넣었다”며 “연구비를 포함한 예산이 모두 줄어들면서 25개 출연연은 얻어맞은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기관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모여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연구현장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인력 유출이다. 출연연에 회의를 느끼고 떠나는 연구자가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신진연구자를 발굴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출연연 인력 이탈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 과학계를 카르텔로 규정하고 초유의 예산 삭감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이탈에 기름을 부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출연연 책임연구원은 “출연연 예산을 삭감하면서 신진연구자를 데려오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연구자마저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예산 삭감이 무엇 때문에 이뤄지는지에 대한 설명과 예산 삭감으로 인한 여파가 어떨 것인지 정부에서 더 면밀한 분석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의 인력 이탈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출연연을 떠난 연구자는 모두 1066명이다. 2018년 169명으로 시작해 2019년 223명, 2020년 229명, 2021년 250명, 지난해 195명 등 출연연을 떠나는 연구자 수는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이직한 출연연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정부가 R&D 예산을 늘리겠다고 한 중점 분야를 연구하는 출연연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을 조정하면서 첨단바이오와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양자, 반도체, 이차전지, 우주 일곱 가지 분야의 투자는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분야를 담당하는 출연연도 이번 예산 삭감 사태 속에 20%가 넘는 연구비가 줄었다. 한 우주 분야 출연연 관계자는 “우주 분야는 예산을 늘려준다는데 우주 분야 출연연은 예산이 20% 넘게 줄었다”며 “어디에서 누구에게 지원을 늘린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양자 분야를 연구하는 출연연 관계자도 “중점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라고 해서 상황이 낫지 않다”며 “아직 국회 통과는 안 됐지만, 현재 예산 배분안이 그래도 통과된다면 양자 관련 신규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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