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석열과 관상가, 그리고 홍석현
윤석열 - 홍석현 회동에 동석했던 ‘역술가’는 백재권
“대통령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한 건 무속인 천공이 아니라 관상가이자 풍수지리가인 백재권 씨였다” 지난 주 KBS가 보도한 경찰 수사의 잠정 결론이다. 백재권 씨가 이를 시인하면서 KBS 보도는 사실로 굳어졌다.
KBS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백재권 씨의 이름이 아주 낯익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뉴스타파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11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심야 회동을 가진 사실을 보도했는데, 당시 두 사람의 회동에 제3의 인물인 역술가가 동석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뉴스타파는 문제의 역술가가 누구인지 다각도로 취재했는데 취재 결과 동석한 역술가는 바로 백재권 씨였다. 다만 복수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백재권 씨 본인이 뉴스타파 질의에 침묵으로 일관한 탓에 당시 기사에 실명을 보도하지는 못했다.
바로 그 백재권 씨가 윤석열 대통령이 머물 관저 후보지를 보러 갔다는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홍석현과 함께 윤석열 ‘면접’ 봤던 백재권
2018년 윤석열 홍석현 백재권 3인의 심야 회동을 지켜본 술집 사장의 얘기를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석열이는 혼자 오고... 기사하고 자기 차 타고 왔대. 기사는 차에서 기다리고. 홍석현은 점 보는 애 있어. 사주팔자하는 애. 걔하고 같이 왔더라고. 그러니까 세 사람이지, 그 점술가까지 해서.
(그 점술가는 이름이 뭐에요?)
알았는데 까먹었어. 턱수염이 이렇게 나고
(그 점술가는 홍석현이 데리고 왔고?)
어 같이 다니는 것 같은데
- 서울 인사동 000 술집 사장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후 취재 과정에서 술집 사장이 말한 '점술가'는 백재권 씨인 것으로 파악됐다. 밤 11시쯤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맥주 7병과 소주 1병 반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윤석열 당시 검사장은 술집 사장의 기타 반주에 맞춰 ‘아베마리아’와 ‘빈센트’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술집 사장은 또 윤 검사장이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른 탓에 정작 홍석현과 윤석열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라면 홍석현 회장은 무엇 때문에 윤석열 검사장을 만난 것일까. 관상가인 백재권 씨의 존재가 그 만남의 동기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홍 회장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윤 검사장은 술에 취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홍 회장이 데리고 온 관상가 백재권 씨는 윤석열 검사장을 계속 지켜봤다고 한다. 한때 언론사 입사 시험으로 유행하던 ‘음주 면접’같은 분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만난 뒤 “윤석열은 시대가 원하는 관상” 칼럼
백재권 씨는 당시 중앙일보 지면에 이른바 ‘동물 관상’ 칼럼을 쓰고 있었다. 사람의 관상을 동물에 빗대 평가하면서 운명을 예측하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백 씨가 윤석열 검사장을 만나고 난 뒤 칼럼의 논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윤 검사장을 만나기 전에 쓴 칼럼은 그를 ‘공포의 악어’ 관상이라고 평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두루 나열했다. 윤석열 검사장을 지휘하려면 위엄있는 관상을 지닌 인물을 법무부 장관에 올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홍 회장의 소개로 윤석열 검사장을 만나고 난 뒤의 칼럼은 완전히 달라졌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나기 한 달 전이어서 차기 검찰총장의 하마평이 무성하던 때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이다. 백재권은 칼럼에서 차기 검찰총장 후보 4명의 관상을 평했다. 그러다가 관상으로만 보면 윤석열 검사장이 가장 유리하다고 편을 들었다. 이어서 일방적인 칭찬을 퍼부었다.
악어 관상 윤석열은 합리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명석하기에 어설픈 짓은 안통한다. 또한 직분에 충실한 걸 좋아하고 편중된 사고 자체를 싫어한다. 변함없이 믿음직하고 우직한 악어다…(중략)... 악어는 못생겼지만 세상을 정화하는 고마운 동물이다. 또한 악어는 아무리 배고파도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동료나 친구를 물지 않는다… (중략)... 대의를 위해 세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관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악어’를 앞세우면 국정 동력을 잃지 않고 추진하는 일에도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윤석열은 시대가 원하는 관상을 지녔다. 세상이 악어를 부르고 있다
- 2019.6.14. 중앙일보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홍석현 회장은 관상가를 데리고 윤석열 검사장을 두고 일종의‘면접’을 봤다. 그 뒤에 나온 칼럼으로 미루어 보건대, 윤 검사장은 아마 그 면접을 통과한 것 같다. 관상가는 홍석현회장이 소유한 중앙일간지의 지면을 통해 윤석열 검사장을 칭송했다.
이후 홍석현과 윤석열, 백재권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미루어 짐작하건대 더 돈독해지지 않았을까.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인으로서 미래가 불투명했던 자신을 가리켜 ‘왕이 될 상’이라고 낙점해준 백재권과 그를 소개해준 홍석현이 고마웠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재권 씨가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의 만남은 이런 배경에 의해 성사됐을 것이다.
라스푸틴과 진령군
육군총장 관저를 방문한 게 천공이 아니라 백재권 씨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여댱과 대통령실은 “천공이 관저 후보지를 방문했다는 의혹 제기는 가짜뉴스였다”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천공이냐 백재권이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공적인 역할과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관상가가 어떻게 국가의 공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그것도 대통령 관저 후보지 선정이라는 매우 중대하고 기밀이 요구되는 의사 결정에 개입하게 되었는지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백재권 씨가 누구의 추천과 어떤 과정을 통해 대통령 관저 후보지를 방문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그의 조언이 공적인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영향력은 어떤 경로를 통해 행사되었는지 등이 세세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홍석현 회장이 소개해 맺어진 백재권 씨와 대통령 부부와의 사적 인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분명히 규명되어야 한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에게는 라스푸틴이라는 괴승이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인 명성황후에게는 진령군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라스푸틴과 진령군은 무너져가는 통치 권력으로부터 민심이 이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비주의나 무속, 풍수지리는 현대 국가의 합리적 운영과, 더군다나 정당성과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권력 시스템과 어울리지 않는다.
뉴스타파 심인보 inb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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