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아?" CNN이 한국에 존재하는 400개의 '노 키즈존'에 제기한 의문
[아이뉴스24 최란 기자]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저출산 극복을 위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는 한국에서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이른바 '노키즈존'(no-kids zones)이 성행하는 것에 대해 외신이 이를 조명했다.
미국 CNN 방송은 24일(현지 시각)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에서 노키즈존의 타당성을 두고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어른들이 방해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키즈존'이 눈에 띄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카페와 식당에서 아이들을 막는 것은 출산 장려에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꼬집었다.
CNN은 노키즈존이 제주에만 80여곳, 전국에 400여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0.78명으로 이는 안정적인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인 일본(1.3명)과 1.6명으로 자체적으로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미국보다도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고령화 문제로 인해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들며 연금·의료비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CNN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장시간 근로, 경제적 불안감 증가 등으로 압박받고 있다"며 "노키즈존 비판자들은 사회가 어린이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를 바꾸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한국이 노키즈존 도입을 하게 된 계기로 2012년 2월에 발생한 푸드코트 화상 사건을 꼽았다.
이 사건은 한 아이의 어머니가 서점 식당가에서 아들과 식사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종업원이 실수로 어린이의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화상을 입혔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사라졌다며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됐다.
해당 50대 종업원은 '된장국물녀'로 불리며 지탄을 받았지만 얼마 후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니다 종업원에게 부딪힌 후 국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달려가는 모습이 담긴 보안 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대중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많은 사람은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엄마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 후 노키즈존이 카페뿐만 아닌 식당과 다른 사업체에까지 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CNN이 인용한 2021년 11월 한국리서치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사업주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리이자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라는 이유로 노키즈존 운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71%에 달했다. 당시 '허용할 수 없다'는 비율은 17%에 그쳤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것은 자녀가 없는 성인들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평화롭고 조용히 지낼 권리가 널리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도 노키즈존을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두 살배기 남자아이를 키우는 이씨는 "아이와 함께 외출하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며 "아이를 통제하지 못해 시설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부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노키즈존이 왜 있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이씨는 "사업주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며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린이 허용 구역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김씨는 "노골적인 노키즈존 표지판이 가게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공격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며 "이미 한국에는 '맘충'('엄마 벌레',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아이만 챙기는 엄마를 비하하는 말) 같은 용어로 엄마에 대한 혐오가 많은데 노키즈존은 그런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CNN은 출입제한 대상이 어린이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노틴에이저존'(10대 출입금지) '노시니어존'(노년) '노아재존'(중년) 등 연령에 따른 금지구역 설정은 물론 '노래퍼존' '노유튜버존' '노프로페서존'(교수) 등 특정 직역의 사람들까지 배제하는 공간마저 등장했하고 있다.
"중장년층 금지 구역"이 너무 많아서 "아저씨"를 뜻하는 은어에서 유래한 "아재 금지 구역"이라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한국 전문가 보니 틸란드 교수는 "특히 20~30대 한국인은 개인 공간에 대한 개념이 강하고 시끄러운 아이들과 노인들을 못 견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공공장소에 자신과 다른 그 누구도 포용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반영한다"라며 "모두에게 '각자의 위치'가 있다는 뿌리 깊은 태도가 엄마와 아이들은 바깥 공공장소가 아닌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갖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CNN은 2021년 현역 국회의원 신분으로 아들을 낳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사례도 소개했다.
용 의원은 산후 우울증에 시달려 거의 100일 만에 밖으로 나섰는데 "근처 카페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노키즈존이라는 이유로 바로 입장이 거부됐다"라며 "사회가 저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워킹맘이 죄인인가"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국내 대형 테크기업 프로그래머의 사례를 전하며 "육아를 개별 양육자나 부모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만드는 것이 인구 문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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