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거 타도 안 세 보여” 그 수입차, 1년 뒤 매물로 나온다 [이슈&탐사]

이택현,정진영,김지훈,이경원 2023. 6. 20.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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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벤츠 매장의 모습. 이한형 기자


‘현시적(과시성) 소비’의 또다른 바로미터인 수입차는 오늘날 서울 시내 도로를 달리는 차량 5대 중 1대를 넘어섰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수입차는 모두 65만3917대로 서울시 등록 차량 전체의 20.5%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하는 이 비중은 지난해 10월 20%를 돌파했고 이후 조금씩 상승 중이다. 전국적으로는 총 326만1207대(12.7%)의 수입차가 달리고 있는데, 신규 등록 차종에서는 해마다 6~8만대가 팔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벤츠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팔리는 시장이 한국이다.

수입차를 예외적인 사치품으로만 보던 시기는 지났다. 문제는 수입차 행렬의 일부는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이며, 멋들어진 현실의 이면에 역설적으로 불투명한 미래가 담겼다는 점이다. 수입차 판매가 늘면 이로운 판매업자들조차 고가의 차량이 다시 시장에 흘러나오는 일이 잦다며 ‘버블’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하는 25개 할부금융사의 연체율은 2021년 말 0.86%에서 지난해 말 1.04%로 높아졌다. 26개 리스사의 연체율은 같은 기간 0.73%에서 1.22%로 뛰었다.

‘하차감’ 고작 1년 “도로 시장行”

도로의 수입차 중 몇 대가 무리한 과시욕으로 달리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다만 수입차의 명운을 중간중간 엿보는 이들은 수입차의 증가 속에 무리한 소비의 비중이 들어 있으며, 그 비중이 점점 커진다고 체감하고 있다. 한 중고차 공매업체 직원 A씨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1~2년 전엔 매물이 한 달에 400~500대였는데, 이달엔 30%가량 늘었다”고 체감했다. 차량이 공매에 넘어간다는 것은, 중고차 업체나 할부금융업체가 차량을 회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비싼 차를 사 놓고 할부금과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차주(車主)가 늘었다는 뜻이다.


20년가량 중고차 판매 일을 해온 경기 수원의 한 업체 대표 B씨는 한 달에 20건가량의 매매를 직접 처리하는데, ‘조마조마한 거래’가 1~2건씩 꼭 끼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차를 사려는 이들에게 넌지시 월급을 물은 뒤 해당 차량은 고급유를 주유하고 워셔액이 전용이며 서비스 비용만 수십만원이 든다고 말해준다. 고집을 부리는 청년들에게는 “이걸 타 봐야 그리 세 보이지 않는다”며 만류하는데, 대개는 “지금 안 타면 영원히 못 탄다”며 벤츠와 BMW의 ‘하차감’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월수입에 비해 ‘조마조마한 거래’를 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은 1~2년 뒤에 그 차를 다시 팔러 가져온다고, B씨는 말했다. 30대는 40대와 50대에 비해 소득이 적지만 BMW와 벤츠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이 구매하고 있다.


한껏 뽐내며 타던 차량을 되파는 빈도만으로 ‘카푸어’ 집합의 크기를 가늠하기엔 한계가 있다. ‘못 파는’ 경우가 ‘안 파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 통계의 사각 때문이다. 차량이 고가일수록 감가가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차량을 팔아도 남은 빚을 모두 청산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무리하게 현시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1억원 안팎의 차를 ‘풀 할부’로 구매하는데, 3개월만 밀려도 갚을 돈이 1000만원에 이른다. 중고차 매매 상사와 자동차 할부업체가 카푸어의 할부금 연체를 기다려 주는 건 통상 3개월이다.

차를 팔 때 보이는 다른 시장

수입차 매매 현장에서 엿보이는 것은 다른 자산시장의 등락이다. 딜러들은 약 10년 전부터 수입차의 구매 행렬을 보면서 “사람들이 집을 꿈꾸지 못하니 차를 좋은 걸 사는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공장 노동자, 원룸과 고시원에 월세로 사는 사람이 수입 세단을 모는 일은 더 이상 딜러들의 점심 자리에서 회자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주택을 장만하기 위해 소득을 절약하는 일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딜러들은 수년 전에는 ‘비트코인’으로 돈을 만져 수입차를 사러 온 젊은 고객이 많았다고 했다. 그때 그들은 가격을 흥정하려 들지 않았고 쉬지 않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이후 금리가 고금리로, 경기는 둔화세로, 코인은 하락세로 급격히 반전됐다. 한 중고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차를 ‘반대로 바꾸는’ 이들이 오히려 3배”라고 말했다. 한때는 가상자산 수익으로 수입차를 사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이 타던 차를 세워두고 값싼 차로 바꿔 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국인의 유난한 수입차 사랑은 조금 진정될까. 수입차를 파는 이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판매업자들은 “수입차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스펙’이 돼 있다”고 말했다. 점심값을 아껴 할부금을 낼지언정 차량 때문에 무시받는다고 불안해 하는 이들이 는다는 게 업계의 체감이었다. 명품백보다 오히려 현시성이 큰 차량임을 고려하면 한번 커진 소비 성향이 잠잠해지기도 어렵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수입차는 수백만원이 아니라 1억원이며, 명품백보다 노출이 크다”며 “현시적 소비의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했다.

오정민 오토비즈컴 대표는 “카푸어들은 금리가 5~6%대일 때에도 10% 이상 고금리에 대출받는 사람들이었다”며 “금리가 오른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월급의 ‘4~5분의 1’ 정도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쉽게 접근하면 1년 안에 무너진다. 할부금 이외에 유지비도 크다”고 했다. 김 교수는 “카푸어는 줄지 않는다. 욕구가 강하면 일을 저지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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