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위로하고 싶어요” 치유 나선 세월호 생존자들

정신영 2023. 4. 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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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치유사’된 세월호 생존자
청소년 대상 ‘운디드힐러’ 활동
“타인 치료하며 내 상처도 회복”
이태원 피해자에게 위로의 글도
세월호 참사 9주기인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이날 세월호 출발지인 인천과 목적지였던 제주, 침몰된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인서 박선영 유가영씨는 지난 9년을 살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이 질문을 던졌다.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이던 이들은 그날 평생 가시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참사 생존자’라는 꼬리표도 달렸다. 바닥 모를 죄책감으로 심해 속에 혼자 남겨진 듯했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쳤다. 겨우 도달한 답은 “내가, 내 상처가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보였다고 했다. 세 사람은 아동청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돕는 비영리단체 ‘운디드힐러’를 만들었다. ‘상처입은 자’(운디드·Wounded)에서 ‘상처입은 치유자’(운디드힐러·Wounded healer)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세월호 9주기인 16일 경기도 안산 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내 상처를 도구로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도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서로 통했다고 했다. 처음 모인 건 5년 전이었다. 그전엔 알음알음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다. 유씨는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선뜻 세상에 나선다는 건 이들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다시 꺼내는 건 넘지 못할 벽을 부수는 일처럼 다가왔다. 이씨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게 무서웠다. 생존자에 대한 비판·비방이 계속되면서 어딘가에 노출되는 게 곧 위협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2021년 뒤늦게 합류한 박씨는 “당시 나는 운디드에 머물러 있는데 운디드힐러로 활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렵지만 상처를 ‘다리’ 삼아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자신들처럼 타인이 그들의 인생에 들어오는 걸 부담스러워 할까봐 인형극과 그림책을 만들었다. 박씨는 자신이 겪은 불안정했던 경험을 여기 녹여냈다. 그는 “분노를 주체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진짜 이상해진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며 “나중에서야 ‘트라우마 증상이라는 걸 모르고 내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을 탓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그건 트라우마일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인형극과 그림책을 제작하면서 세 사람 자신들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회복되는 경험을 했다. 이씨는 “인형극 대본을 쓰면서 내가 경험한 아픔을 꺼내야 했다. 마음속 깊은 아픔을 묻어두지 않고 은근히 꺼내면서 스스로도 힘든 부분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나는 원래 말을 잘하는 사람인데, 다른 참사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가 아직 괜찮지 않아서였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아직 완전한 힐러로 성장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씨는 “아직도 운디드에 머무를 때도 많다.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아직 또 다른 상처를 마주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도 “사실 지금도 준비가 됐다기보단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웃으며 거들었다.

그래도 상담 현장에서 들려오는 변화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된다. 이씨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인형극을 마친 뒤 한 아이가 주인공 인형 ‘아리’를 붙잡고 ‘아리야 괜찮아.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라며 말을 건 적이 있다. 아리라는 존재를 이해해주고 자기의 아픔도 같이 얘기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다.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운디드힐러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모여 만들었지만, 현재는 다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활동 반경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최근에는 익명으로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게 위로의 글을 쓰고 있다. 박씨는 “세월호 참사도 이태원 참사도 놀러 가서 난 사고였는데 국가가 책임져야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모든 참사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없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NGO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유씨는 “9년 전에 힘들었던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우리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일어날 힘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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