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선비 묘명과 할매 시

남궁창성 2023. 2.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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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전기 이홍준(李弘準) 선생이 남긴 묘명이다.

스물일곱 자로 전 생애를 기록했다.

중종 실록에서는 중종 7년(1512년) 4월17일 진사(進士) 이홍준이 진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홍준의 묘명은 재주도, 덕도 없는 보통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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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가 없는데 덕도 없으니 사람일 뿐(旣無才 又無德 人而已)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生無爵 死無名 魂而已) 걱정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그치니 남은 것은 흙뿐(憂樂空 毁譽息 土而已)’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전기 이홍준(李弘準) 선생이 남긴 묘명이다. 스물일곱 자로 전 생애를 기록했다. 중종 실록에서는 중종 7년(1512년) 4월17일 진사(進士) 이홍준이 진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인 이종준(李宗準)이 형이다. 형은 과거 급제 후 의성 현령과 서장관을 지냈다.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 당시 유배를 갔다. 귀양길 불온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서울로 잡혀 와 이듬해 죽임을 당했다.

이홍준의 묘명은 재주도, 덕도 없는 보통 사람. 살아서 별 볼 일 없었고 죽어서 이름 석자도 증발해 버려 몸뚱이가 사라지면 혼만 남을 존재. 그래서 생전의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그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갈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했다.

입춘이던 지난 4일 칠곡 할매시인 박금분 할머니가 봄꽃처럼 아흔넷 생애를 마쳤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못 먹고 못 배우던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을 읽지 못했다. 구순을 바라보던 나이에 마을 한글학교에서 글자를 깨쳤다. 글을 읽을 줄 아니 세상이 달라 보여 또래들과 시 아흔여덟 편을 묶어 시집 ‘시가 뭐고’를 냈다.

시집에 할머니가 쓴 ‘가는 꿈’이 실려 있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할머니는 가슴을 멍하게 울리는 시처럼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곱게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언제 왔다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왔다 갔던 이홍준 선생. 몸 덜 상하고 정신 좀 더 있을 때 가는 것을 소망했던 박금분 할머니. 우리 삶이 눈 녹은 진흙땅에 잠시 내려앉았다 훌쩍 날아가 버린 기러기 발자국을 닮았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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