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 농부다] “피땀 어린 결실 ‘잘 파는 것’까지 농사” 소비자 수요 틈새시장 공략 통했다

이설화 2025. 3. 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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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유학 중 홍천 귀농 결심
농업법인 설립 가공·기획·판매 나서
온라인 시장 교육 참가 경쟁력 강화
스마트스토어·11번가 등 플랫폼 입점
‘젓갈 없는 김치’ 전국적 인기 끌기도
“사랑하는 어머니 동료이자 협력자”
든든한 동반자 각별한 모녀 관계 훈훈
마케팅 특강 등 농산물 판로개척 앞장

6. 이민서 푸르린 대표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잘 팔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중국에서 홍천으로 귀농한 이민서(32) 푸르린 대표는 온라인 판매를 공략했다. 땀흘려 농사지은 결과물을 ‘잘 파는’ 것까지가 그에게 농업이다. 농업법인회사 푸르린을 세웠고, 농사부터 가공, 기획, 판매에도 손을 뻗쳤다. 최근엔 온라인 판매 상담, 강의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12일 홍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이민서 씨를 만났다. 기술센터는 지역 청년농업인단체인 홍천군4-H연합회 회장을 맡고있는 그가 요즘 가장 자주 오가는 곳이다.

▲ 감자 캐던 때. 첫 수확의 기쁨도 잠시 이민서 대표의 머릿 속은 “어떻게 팔아야 하지?”라는 고민으로 가득했다.

■온라인 판매, 무기가 되다

23살, 중국 북경에 있던 민서 씨가 돌아온 곳은 서울이 아니라 홍천이었다. 중국어 공부를 위해 떠난 북경이었다. 서울에서 속초, 고성을 오가며 수산물을 떼다 팔았던 어머니는 그즈음 강원도 거주를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홍천 귀농을 결정했다. 민서 씨도 엄마 뜻에 따랐다.

“어떻게 팔지?” 귀농한 첫 해, 감자를 캐던 민서 씨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울고 웃으며 힘들게 수확한 감자였다. 민서 씨는 “빨리 팔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서울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지인 말고는 판로가 없던 민서 씨가 떠올린 건 온라인이었다. 처음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온라인 카페를 공략했다. 민서 씨에 따르면, 당시는 온라인 농산물 판매가 확대되던 때다. 마침 네이버에서 진행한 ‘청년장사꾼 프로젝트’가 민서 씨 눈에 띄었다. 멘토가 쇼핑몰의 상세 페이지 만드는 법, 사진 찍는 법 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밤새 사업계획서를 썼다. 강원 지역 농수산물을 그대로 구매자의 식탁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이 기회가 민서 씨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부터 11번가, 이베이 등 플랫폼에 입점해 재량껏 상품을 팔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 네이버 실시간 많이 본 상품 3위에 홍천 이민서의 수미감자가 랭크되기도 했다.

온라인 판매는 민서 씨의 무기였다. 그즈음 직접 캔 감자 뿐 아니라 판매 요청이 들어온 도루묵, 가리비, 귤, 블루베리 등을 팔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 있는 판매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이 당시 생겼다.

▲ 이민서 푸르린 대표가 지난해 6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2024 농식품 라이브커머스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젓갈없는 김치 팔기 전략

‘젓갈 없는 김치’는 민서 씨가 가장 잘 팔았던 상품이다. 민서 씨는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안 좋아해서 엄마가 저를 위한 김치를 담가주시곤 했다”고 설명했다. 김치에 들어갈 열무며 고춧가루를 직접 재배했고, 엄마와 함께 운영했던 반찬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선보였다. 손님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치는 지역 출신 유명 유튜버 ‘밥굽남’에 소개되면서 더욱 ‘떴다’. ‘온라인 판매’가 빛을 발했다. 홍천중앙시장 4평짜리 반찬가게에서 만들어진 김치는 전국으로 배송됐다.

민서 씨는 젓갈없는 비건김치 판매의 또 다른 전략으로 “스토리텔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젓갈없는 김치를 누가 사먹는다고 생각하느냐”며 “저처럼 젓갈 냄새를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또, 젓갈에는 발암물질이 있어 암환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이같은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하고, 상품 설명에 담았다.

‘판매 경험’은 이제 민서 씨의 또 다른 자산이다. 그에게는 소비자의 문제제기에 대응하는 그만의 절차가 있다. 소비자에 공감하기, 문제를 파악하기, 해결방법을 제시하기, 사후 관리하기 등의 단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 소비자들은 마음을 돌렸다. 그는 “처음엔 소비자의 강한 불만 표출에 서러워 운 적도 많았다”고 했다. 민서 씨는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고, 판매 배경을 이야기하며 신뢰를 쌓았다”며 “불만이 있었던 소비자가 저희 팬이 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10여년의 농사, 판매 경험을 바탕으로 도내 소상공인, 농업인에 온라인 마케팅 특강에 나서고 있다. 민서 씨는 “내가 가진 경험들이 모두 마케팅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 이민서 푸르린 대표와 그의 어머니.

■가장 가까운 동료, 엄마

민서 씨에게 엄마는 각별하다. 중국어 공부를 권한 것도, 귀농을 제안한 것도, 온라인 판매를 떠올린 것도 모두 엄마다. 길목마다 큰 결심을 필요로 했던 엄마의 권유를 거절할 법도 한데, 민서 씨는 엄마를 믿고 따랐다.

엄마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오빠를 돌보는 ‘협력자’다. 민서 씨의 오빠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엄마가 농촌 귀농을 선택한 데에는 오빠가 있었고, 민서 씨도 이에 공감했다. 회사에 오빠를 데리고 갈 수는 없어도, 밭에서는 오빠를 곁에 둘 수 있었다. 오빠의 존재를 아는 주민들은 이제 오빠가 안 보이면 ‘어디 아프냐’는 질문을 건네기도 한다. 밭에 퇴비를 주고, 옥수수 껍질을 까고, 택배 송장을 붙이면서도 민서 씨는 엄마와 번갈아가며 오빠 밥을 챙긴다.

엄마는 민서 씨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전할 수 있는 수신자이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잠을 안자도 정신이 말짱하다”는 민서 씨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엄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민서 씨는 “엄마가 제 편지 받는 것을 좋아했다”며 “글에 엄마와 나의 관계, 20~30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이민서 푸르린 대표

■꿈은 현재진행형

민서 씨는 감자, 옥수수, 고추 농사며 젓갈없는 김치 등 가공식품 판매를 잠시 중단한 상태다. 대신 지금은 농산물 판매 상담과 마케팅 강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4-H홍천군연합회장으로서 지역 농산물 판로 개척에도 나섰다. 지역 청년 행사를 기획해 열기도 하고, 홍천휴게소에 청년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도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여는 엄마 식당에서 일손을 돕는다.

그는 언젠가 홍천에 카페를 차려 자신이 키운 농산물을 직접 요리하고, 예쁜 접시에 담아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민서 씨는 “샌드위치를 잘 싼다”며 “루콜라, 바질 같은 재료를 직접 키우고, 홍천에서 나는 것들을 활용해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만든 유튜브 채널 ‘굳세어라 민서야’를 활성화시키고 싶다. 강원도 여성농업인 바우처로 지난 수년 간 차곡차곡 모은 토지 20권도 완독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민서 씨는 “나만의 이야기를 잘 담고 전달하는 농업인이 되고 싶다”며 “그런 역량을 기르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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