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사채업 키우는 ‘착한 금리’
“15일에 월급 나옵니다. 급전으로 30만원 정도 비대면으로 가능할까요.”(31세 남성·경북)
대출 중개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수십만 원 정도를 급히 융통하고 싶다는 절박한 글이 수두룩하다. 카드론을 거부당하고 저축은행 문턱을 못 넘을 정도로 신용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다. 대개 ‘지푸라기’는 잡을 수 있다. 전화번호를 남기면 사채업자가 연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업자들은 이른바 ‘30·50′을 제시한다. 30만원을 빌리고 일주일 후 50만원을 갚는 방식이다. 연 이자율 3400%가 넘는 폭압적 이자 갈취다. 비슷한 구조로 ‘50·80′도 있다.
요즘 이런 소액 불법 사채시장이 활황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작년 7월부터 법정 최고 금리가 연 20%로 낮아지면서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길이 너무 좁아졌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가계 대출 평균 금리는 작년 10월 연 13.58%였지만 올해 10월에는 13.54%로 미세하게 낮아졌다. 같은 기간 은행 금리가 연 3.46%에서 5.34%로 급등한 것과 다르다. 저축은행이 착해서 그런 게 아니다. 1년 전 연 16~19% 정도에 대출이 가능하던 저신용자들은 지금은 금리 인상을 반영해 연 21~24%는 부담해야 시장 원리에 부합한다. 하지만 ‘연 20% 상한선’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겐 아예 대출 문이 닫혔다.
정부 등록 대부업체들은 저신용 고객에게 떼일 위험을 반영하면 신용 대출 금리가 연 20%를 넘어야 수지가 맞는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자꾸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대부업체마저 서민과 거리가 생긴 것이다. 전당포는 아예 사라지고 있다. 전당포 주인은 20만원을 빌려줄 때 월 이자 수익이 3200원에 그친다. 전당포도 법정 최고 금리 적용 대상이라 그렇다. 돈벌이가 안되니 전당포 폐업이 속출하고, 피해는 소액 급전을 조달할 길이 막힌 서민들 몫이다.
법정 최고 금리는 2010년에는 연 44%였지만 민주당 주도로 국회가 5차례에 걸쳐 인하했다. 금융회사의 탐욕적 금리를 차단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치게 낮아 금융권 대출에서 서민들을 쫓아내는 조치가 됐다. 저신용자 중에는 이자를 연 20~30%대 내더라도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떳떳하게 돈을 빌리고 싶어 하는 이가 꽤 있다. 하지만 연 20%로 막아놓은 ‘착한 상한선’ 탓에 어쩔 수 없이 사채업자에게 고리(高利)를 뜯기고 있다.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미국·독일은 법정 최고 금리 규정이 아예 없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출 금리를 연 10%대로 더 낮추는 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선한 의도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법정 최고 금리가 더 낮아지면 서민들의 금융회사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는 역설이 생긴다. 동시에 사채업자들의 밥그릇이 더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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