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인도 비타민D 선별검사?… 의학계 “권고 안한다”

민태원 2022. 11. 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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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한림원 ‘암 이외 질병에 대한 과잉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 포럼
결핍 기준 지나치게 높게 설정
비타민D 보충 과열 현상 빚어
무증상 노인 치매 선별검사도
권고 않는 건강검진으로 분류

일반 건강인 대상 비타민D 선별검사와 그에 따른 먹는 보충제·고용량 주사제 처방은 권고되지 않는다는 게 의학계 중론이다. 오른쪽은 무증상 성인 대상으로 추천되지 않는 뇌MRI 검진. 게티이미지

국내 병·의원들에서 성행하고 있는 건강한 성인 대상 비타민D 선별검사와 그에 따른 비타민D 경구(먹는) 보충제나 주사제 처방은 근거가 불충분해 권고하지 않는다는 의학계 의견이 나왔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최근 개최한 ‘암 이외 질병에 대한 과잉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 포럼 자리에서다. 의학한림원은 앞서 과도한 암 검진의 문제점을 다룬 바 있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명승권(가정의학 전문의)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국내외적으로 유행한 비타민D 열풍에 대해 짚었다. 비타민D는 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촉진해 뼈의 무기질화(단단해짐)와 면역체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핍되면 골다공증이나 골연화증을 초래해 골절·낙상, 자가면역질환 위험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명 교수는 현재의 비타민D 과열 현상은 ‘결핍 기준’이 과도하게 높게 설정된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하루 권장섭취량에 상응하는 혈중 농도를 기준점으로 삼다보니 비타민D 결핍 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현재 성인의 비타민D 적정섭취량(하루 권장섭취량)은 영국과 한국이 400IU, 미국·캐나다는 600IU 등으로 나라별로 차이난다. 음식·햇볕으로부터 충분한 비타민D 공급이 어려운 경우 보충제 복용을 권고한다. 적정 혈중 농도도 미국 내분비학회와 국내 병·의원은 30ng/㎖, 미국 의학한림원은 20ng/㎖을 기준으로 정한다.

30ng/㎖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국내 남성 약 83%, 여성 88%가 비타민D 결핍 상태로 보고한 연구가 있다. 또 20ng/㎖을 기준으로 분석한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선 남성의 75.2%, 여성의 82.5%가 비타민D 부족에 해당됐다.

이 같은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비타민D 검사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비타민D 결핍 진료 환자는 2017년 8만6285명에서 지난해 24만7077명으로 2.9배 증가했으며 전체 영양결핍 환자의 74% 정도를 차지했다.

명 교수는 “적지 않은 개인 병·의원에서 혈중 농도 30ng/㎖을 기준으로 비타민D 부족을 판단하기 때문에 대부분 결핍증으로 진단돼 먹거나 혹은 주사를 통한 고농도의 비타민D 보충을 권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2016년 권위있는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버메디신(NEJM)에 하버드의대 예방의학과 조안 맨슨 교수가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며 “근래 비타민D 결핍의 높은 유병률 현상은 ‘특정 영양소에 대한 권장섭취량을 결핍의 기준점으로 삼고, 전체 인구가 뼈 건강을 위해 적어도 권장 섭취량 만큼은 섭취해야 한다’는 잘못된 개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권장섭취량 개념은 1943년 세계적으로 인구의 영양결핍이 심각한 상황에서 미국 의학한림원이 주요 영양소에 대한 섭취기준을 제시한데서 시작됐다. 이후 1997년 ‘평균필요량’ 개념을 새로 도입해 권장섭취량과 구분했다. 평균필요량은 ‘과학적 문헌 리뷰에 근거해 특정 나이 그룹의 50% 정도가 필요로 하는 요구량’이며 권장섭취량은 ‘각 나이대와 성별에서 건강한 사람들의 대부분인 97.5%가 만족하는 양’이다. 즉 평균필요량은 한 집단의 가장 많은 사람들에 대한 필요량이고 권장섭취량은 정규 분포에서 가장 극단에 위치한 상위의 필요량을 반영한다.

명 교수는 “미국 의학한림원이 제시한 한 집단의 영양소 섭취량 목표는 권장섭취량이 아니라 평균필요량”이라며 “그런데 대부분의 연구들이 특정 영양소 부족 혹은 결핍을 정의할 때 80년 전 만들어진 권장섭취량을 기준으로 했고, 이 때문에 영양소를 충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족 상태로 잘못 분류해 비타민D 결핍의 세계적 대유행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명 교수팀이 16편의 임상시험을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 간헐적인 고용량 비타민D 보충(경구 혹은 주사)은 낙상과 골절 예방에 효과가 없었으며 질적 수준이 높은 임상시험만을 종합했을 땐 오히려 낙상과 골절 위험을 10% 높여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비타민D의 혈중 적정 농도는 12~20ng/㎖으로 본다”며 “잘못된 권장섭취량 개념을 폐기하고 과학적으로 타당한 영양섭취 기준 마련 논의를 위해 의학·역학·영양·보건학이 포함된 다학제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증상 대상 뇌MRI 등도 비권고

포럼에선 또 권고하지 않는 건강검진으로 증상이 없는 노인에서의 치매 선별검사, 무증상 성인에 대한 뇌MRI(자기공명영상), 무증상 저위험군 대상 심장 관상동맥CT(MDCT) 검사를 꼽았다. 치매 검진의 경우 현재 만 60세 이상 중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모든 국민, 60세 미만으로 인지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사람은 보건소 신청 후 선별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정우경 교수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는 노인 인지장애에 대한 선별검사의 이익과 위해를 판단할 근거가 불충하다고 밝혔고 2019년 영국 국가선별위원회는 증상 발현 전 치매 환자를 발견할 수 있는 선별검사가 없으며 현재로선 추천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정 교수는 “모든 노인을 잠재적 환자로 간주할 수 있고 검증되지 않은 선별검사로 인한 불필요한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면서 “선별검사보다는 캠페인이나 홍보를 통해 증상이 의심되는 환자를 주변에서 빨리 발견해 조기 진단을 권유하는 것이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일반 인구에서 뇌병변 발견을 위한 뇌MRI 검진도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현재 많은 건강검진기관에서 뇌졸중·뇌종양 등 조기 진단용 MRI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는 “MRI검진으로 발견한 뇌병변 유병률(뇌종양 0.7%, 뇌동맥류 0.35%)이 낮고 위양성(가짜 양성) 비율이 높으며 뇌동맥류의 조기 치료를 위한 발견 이득의 증거도 불충분한데다 고비용이 든다. 불필요한 추가 추적 검사로 인한 위해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무증상 저위험군의 관상동맥CT 역시 찾아내는 질병 유병률이 낮고 상대적으로 높은 방사선 피폭 위험 때문에 선별검사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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