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삶을 사랑한···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오웰[전희상의 런던 책갈피]
<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전선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료 도중 공화파의 내분이 격화되면서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적시에 스페인을 떠나 다행히 정치적 희생양으로 최후를 맞는 비극적 운명은 면했다. 하지만 갖은 고난이 무색하게 결국 전쟁은 파시즘 세력의 승리로 끝났고 말았다.
부상과 배신과 도주와 패전. 완전한 실패다. 그럼에도 그는 <카탈로니아 찬가>에 스페인 공화국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썼다.
오웰은 스페인에서 고작 6개월 머물렀을 뿐이다. 하지만 의용군 공동체 생활을 통해 기이하고 강렬한 체험을 했고 이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의용군은 오합지졸이었고 무기와 보급도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희망이 넘쳐나 냉소와 패배 의식은 설자리가 없었다. 진실한 동지애, 평등과 존중의 기운이 도처에 가득했다.
그것은 “인류애”로서의 사회주의 체험이었다. 오웰에게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나 사상 체계가 아니었고 유토피아 건설은 한낱 환상에 불과했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위해 희생과 파괴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멸했다.
오웰이 “장미를 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에 따르면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미적인 행위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특유한 태도, 인생의 의미를 정치적 이상의 실현에서 찾는 입장과 대척점에 있는 시각이 담겨 있다. 물론 오웰은 평생 불의에 강하게 저항했고 뚜렷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정치가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유리되고 그것의 말살로 귀결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마찬가지로 오웰의 정치적 글쓰기에서 방점은 정치와 글쓰기 모두에 찍혀 있다. “나는 허위를 폭로하고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끌기 위해 글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미적 경험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책을 쓸 수 없다. 아니 하다못해 잡지 기사를 쓸 수도 없다… 건강히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문체에 신경을 쓸 것이고, 대지를 사랑할 것이고, 여러 물건이나 별 볼 일 없는 정보 뭉치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일상의 삶 그리고 글쓰기의 합일을 추구했던 오웰은 무엇보다 지상의 삶을 사랑했다. 저격을 당해 총알이 목을 관통했을 때 “꽤나 괜찮은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격렬히 분개”했다고 회고할 정도다. 그래서 “성인은 술·담배를 피해야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은 성인이 되는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썼다. 인간다움의 본질이 완벽의 추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 때로는 과감히 죄를 범할 수 있는 지혜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간디의 비타협적 절대주의와 금욕주의, 그의 초월적 영성에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오웰의 이러한 면모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그는 기껏해야 소련식 사회주의를 강력히 비판한 괜찮은 좌파 지식인 정도로 소비될 뿐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그랬다. 솔닛에 따르면 오웰이 전체주의를 신랄히 비판한 명작 <1984>를 출간했을 때 재미있게도 많은 보수당 지지자들이 오웰이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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