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 간 '셰프 스승' 정관 스님..현지인 입맛 사로잡다
정관 스님은 베트남 검역이 타결돼 수입되기 시작한 한국산 단감, 파프리카와 표고버섯, 취나물 등의 임산물, 샤인머스캣 등 우수한 우리 농식품을 활용해 고유의 사찰 음식 메뉴를 선보였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aT의 기노선 식품수출이사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베트남 최고급 호텔인 메트로폴호텔에서 3회째 한국미식주간 행사를 이어올 수 있어서 기쁘다”며 “프리미엄 식품으로서의 우수한 한국산 식재료 이미지가 베트남에서 자리매김하게 되면 향후 한국산 고급 식재료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지 반응도 뜨겁다. 팜 탄 빈 베트남 외교부 동북아시아 국장은 “내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맛있는 식사는 처음”이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행사에 참석한 프엉 레 린 씨도 “교환학생 시절 한국에서 체험한 템플스테이를 잊지 못해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미식주간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 정관 스님 비장의 메뉴는?
121년 전통의 유서 깊은 하노이 메트로 폴 호텔에서 10월 31일까지 2주간 베트남 ‘인싸’들을 사로잡고 있는 정관 스님만의 메뉴는 무엇일까.
전채 요리는 흑임자 깨죽과 토마토 장아찌, 파프리카 두부찜과 표고버섯 조청 조림으로 구성했다. 메인 요리로는 야채를 넣어 정관 스님의 고추장, 된장을 풀어 푸근하게 지져낸 옛 스타일 야채장떡과 감말랭이 무침, 현지 채소와 한국 산나물(취나물) 고명을 얹어 정관 스님 특유의 ‘빡빡장’으로 비벼먹는 비빔밥과 뿌리채소 탕수이로 구성했다. 디저트로는 토마토에 빠진 샤인머스캣과 김부각, 감자부각으로 구성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유영국 씨는 “베트남에는 1000만명 이상의 불교 신자들이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는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는 전통이 있는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번 행사가 연일 현지인들의 예약으로 매진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식품 업계도 베트남 비건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 현지 극찬에 정관 스님도 미소 만발
정관 스님 별명은 ‘우주 대스타’다.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 주로 있는데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한 수 배우러 오기 때문.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에서도 미식가의 극찬이 이어진 데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인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에 출연한 후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다. 매년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준 요리계의 인물을 선정하는 ‘아이콘 어워드 아시아 2022’의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스님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렸다. 기념 촬영을 하러 줄을 서는 고객들이 있는가 하면 ‘한 수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현지 유명 셰프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다음은 스님과 일문일답.
Q. 하노이 한국 미식주간 2022 의 메인 셰프로서 소감을 밝혀준다면.
약 20여년 전, 동남아 성지순례 이후 오랜만에 방문한 베트남이다. 너무나도 친근하고, 정겨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특히, 한베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해이고, 이렇게 의미 있는 한국미식주간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약 십여 년 동안 유럽을 위주로 강연과 행사를 다녔는데, 몇 년 전부터 아시아 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미얀마에서 발우공양 행사를 한 이후 아시아에 더 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9월 말 태국에서 승려들에게 발우공양 행사를 했다. 이렇게 베트남에 오니 생각하던 아시아 순방이 이뤄지는 것 같아 기쁘다.
Q.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는데.
미식주간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들이 즐거워한 것 같아 좋다. 우선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고, 더불어 올해 한식주간의 테마라는 지속 가능한 한식,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생소한 콘셉트일 텐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웰빙과 개인의 건강, 그리고 지속 가능한 음식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도가 전해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흔히 알고 있는 한식이 아닌, 좀 더 새로운 한식을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Q. 새로운 한식이라면.
오자마자 짐 풀고 시장으로 나갔다. 아직도 정겨운 재래시장의 모습이 남아 있어 기분이 좋았고, 너무나도 다양한 야채가 신선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에 신이 났다. 미식주간을 위한 기본 사찰 음식 레시피에 현지 야채를 사용해 메뉴를 잡았다. 시장에서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산갓을 보고 산갓과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즉흥적으로 담가봤는데 현지 셰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Q. 베트남 현지 음식을 드셔보셨는지.
원래 베트남 음식을 좋아한다. 입맛에 맞는다. 전북 정읍에 5일장이 서는데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며느리가 농사지어 베트남 식자재를 파는데 거기 단골이다.
특히 해외를 다닐 때, 칼칼한 음식이 땡길 때는 꼭 포(Pho)집을 찾아 먹고는 한다. 하노이에서는 스트리트 푸드가 유명하다 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먹어봤다. 채소가 많아 비건이 먹기 좋았고, 또 찹쌀, 녹두, 두부, 토마토 등을 많이 사용해 영양의 밸런스도 챙겨진 음식이어서 좋았다.
기억에 남는 메뉴는 아침 식사로 많이 먹는다는 뱅꾸언으로 좁은 음식점에 쪼그려 앉아 오손도손 먹었다. 쌀가루를 풀어 크레페같이 부쳐 속에 목이버섯 등을 넣어 말고, 여기에 느억맘에 매콤한 고추를 넣은 소스를 찍어 음식인데 만드는 방법이 재미있어 만드는 냄비를 구해 샀다. 분옥이라는 토마토 국물을 사용한 면 음식도 칼칼하고 입맛에 맛아 기억에 남는다.
Q. 사찰 음식의 앰버서더로 해외 순방을 많이 다니는데, 사찰 음식의 세계화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찰 음식은 한국 음식 문화와 불교문화가 접목된 독특한 문화다. 동남아와 비교하자면 동남아 소승불교는 탁발 문화기 때문에 승려들이 돌아다니며 음식을 탁발해 나눠 먹는 문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육류를 포함한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반면 한국의 사찰 음식 문화는 사찰에서 만들어 나눠 먹는 발우공양 문화기에, 다양한 지역의 승려들이 모여 음식을 함으로써,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는 다양한 조리법이 존재한다. 또한 남기지 않고 먹을 만큼만 먹으며,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이를 일 년 내내 보관하는 발효기법이 발달한, 지속 가능한 음식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내 건강은 내가 챙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음식이 곧 약이다. 깨끗한 식자재와 좋은 마음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다. 이런 마음을 많은 세계인들이 공유하는 듯하다. 비건이 많아졌고,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다. 특히 유럽에서는 ‘발효’ 테마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한국 사찰 음식에서 사용하는 발효기법, 특히 한국의 장, 건조나물, 장아찌에 대한 관심이 높다.
Q. 어떤 경험을 더 남기고 싶나.
정말 즐겁게 한 행사였다. 현지에서 아마도 처음 겪어보는 사찰 음식을 선보일 수 있어 좋았고, 베트남에 대해 너무 좋은 이미지를 갖고 간다. 특히 시장에서 본 자연스럽게 텃밭에서 재배된 듯한 채소들은 탐이 났다. 요즘 한국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하우스 재배를 통해 획일화된 채소들이다. 자연스럽지 않아, 가급적 내 텃밭에서 자연을 더불어 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새로운 한식을 선보이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베트남에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계속되고, 이번 행사를 통해 한식에 대한 생각이 더 좋아졌으면 한다.
[박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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