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돋보기]⑫ 일본·미국 땅 취급받은 아픔..캠프마켓
[※편집자 주 = 인천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국내에서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관문 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유산만 보더라도 철도·등대·서양식 호텔·공립 도서관·고속도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합뉴스 인천취재본부는 이처럼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서린 박물관·전시관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30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한국에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땅 취급을 받았던 곳이 있다. 인천 부평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마켓'이다.
주한미군은 마치 이곳이 미국 땅인 것처럼 'APO 901 샌프란시스코'라는 주소를 썼다.
1939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육군의 무기공장으로 사용됐고, 해방 이후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한 이곳에는 80년 넘게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2019년 12월 캠프마켓을 포함한 국내 4개 미군기지를 돌려받기로 주한미군 측과 합의한 후에야 '금단의 땅'은 우리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강제동원·미군기지…근현대사 아픔 간직한 공간
국내 강제동원의 대표적 시설인 '조병창'과 미군기지가 자리했던 캠프마켓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다.
캠프마켓 부지에 조병창이 들어선 시점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이때 현 부평구 산곡동과 부평동 일대에 주물공장 등 조병창 시설을 건립했다.
역사학계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본의 감시 속에 일본군이 사용할 총·칼·탄환 등을 만들며 노동을 착취당했다.
당시 북한 평양에도 일본육군의 조병창이 있었다. 조병창 본부가 있던 부평이 제1제조소, 평양은 제2제조소로 불렸다.
앞서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술집 '일제의 강제동원과 인천조병창 사람들'을 보면 일제는 우리 전문학생과 중학생은 물론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조병창에 동원했다.
해방 이후에는 주한미군이 조병창 부지에 캠프마켓을 포함한 7개 군사 도시로 구성된 주한미육군병참본부 '애스컴시티'를 조성하면서 주둔했다.
기지 안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들을 위한 식당·클럽·PX·병원·도서관·극장·체육관·교회 등이 있었다.
1981년 미8군 의료지원을 담당하던 후송병원이 용산 미군기지로 이전하면서 애스컴시티는 공식 해체됐고 캠프마켓만 남았다.
캠프마켓은 이후 기능이 축소됐고 이곳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제빵공장은 지난해 8월 가동을 중단하고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했다.
조병창 흔적 그대로…보존 놓고는 찬반 논란
캠프마켓에는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의 대표적 시설인 조병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이곳에 주둔한 주한미군이 조병창 건물 상당수를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한반도 전국 각지와 중국에서 공출한 쇠붙이를 용광로에 녹여 무기 부품을 만들던 주물공장의 화로와 외부 굴뚝 연기 통로(연도·煙道) 등의 흔적도 캠프마켓에서 볼 수 있다.
조병창의 병원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도 일부 옛 외형을 간직하고 있다.
병원 건물은 현재 2개로 나뉜 채 중간은 비어 있는 형태다. 비어 있는 지점은 한국전쟁 당시 포격을 맞아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미군과 한국군은 해당 건물을 병원으로 사용했으며 주한미군의 숙소와 클럽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캠프마켓 내에 남아있는 136개 시설물 가운데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은 모두 30개(2011년 문화재청 조사 기준)다.
역사·문화학계는 캠프마켓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시설인 조병창 유적을 최대한 보존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인근 주민들은 이들 시설을 철거하고 대형 쇼핑시설을 유치하거나 공원을 조성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캠프마켓은 일제에 의한 병참 기지화의 증거이자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기의 전쟁 유산으로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캠프마켓…"활용방안 마련 중"
인천시는 캠프마켓 전체 반환을 앞두고 현재 구체적인 부지 활용 방안을 구상 중이다.
한미 합의에 따라 캠프마켓 전체 44만㎡ 중 21만㎡는 2019년 12월 반환됐고, 나머지 23만㎡는 올해 연말쯤 외교부·주한미군·국방부·환경부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서 되돌려받을 예정이다.
인천시는 활용 방안 마련을 위해 공원 관련 전문업체에 의뢰해 지난 5월 기본계획(마스터플랜) 용역을 시작했고, 앞으로 시민 공론화 과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앞서 부산에 있던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가 반환돼 2014년 시민공원으로 조성된 사례가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초기 일본인의 위락시설인 경마장으로 사용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말기에는 일본군 기마부대 주둔지와 임시군속훈련소 등으로 이용됐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인 캠프 하야리아가 설치됐고 2006년에야 기지사령부가 폐쇄됐다.
일부 개방된 인천 캠프마켓 안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캠프마켓 오늘&내일'이라는 이름의 인포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캠프마켓 안내소와 전시·소통 공간으로 운영되는 센터를 방문하면 조병창 때부터 미군기지로 활용되던 시기까지 80여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센터 내에는 과거 촬영된 조병창·캠프마켓의 사진과 연표 등이 배치됐으며 방문객을 대상으로 문화관광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캠프마켓 인포센터 운영시간은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월요일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문화관광 해설 프로그램은 하루 3차례 진행된다.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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