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 개혁 칼 겨눴다.."사실과 다른 보도, 동맹 훼손" 尹의 역공
'유감 표명' 예상 깨고 대립각
야당·언론과 전면전 불가피
"진상 밝혀야" 조사 착수 시사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 에 대해 '진상규명'을 언급하면서 강공 태세를 취했다.
유감을 표명하고 '진화'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을 뒤집고 야당과 언론에 대립각을 세우며 사실상 '확전'을 택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비속어 사용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진상이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논란이라기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전 세계의 한 두세 개 초강대국을 제외하고 자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자국의 능력만으로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그래서 자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는 동맹이 필수적인데 사실과 다른 보도로서 이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사실상 비속어 논란을 최초 보도한 MBC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미국 순방 중이던 지난 21일(현지시간)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행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 48초간 환담을 했고, 이후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중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상 카메라에 포착됐다. MBC 측은 정확히 들리지 않는 공란 부분에 '바이든은'이라고 자막을 달았다. 이후 대통령실은 '바이든은'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억달러 공여를 약속한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 승인을 받지 못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창피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사적 발언이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국회를 향한 '이XX' 비속어 논란에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순방 외교와 같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서 허위보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악영향"이라고 윤 대통령과 맥을 같이 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발언에 대해 "동맹을 희생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피해자는 다름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아마도 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이 진상조사를 할 상황이나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다만 여당 등이 추가로 조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와 야당을 겨냥해 '이XX'라는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야당을 지목한 게 아니다"라며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몸을 낮추는 대신 역공을 택한 것은 비속어 논란으로 해외 순방 효과가 절감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5박7일 간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동안 유엔 총회에서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했고, 반도체, 전기차 등 첨단산업 분야의 7개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총 11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600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음에도 모두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날 발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조사기간 19∼23일,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긍정평가가 0.2%포인트 오른 34.6%, 부정평가가 1.0%포인트 내린 62.2%였다. 소폭 오르긴 했지만 일간 조사에서는 20일 기준 36.4%까지 긍정평가가 올랐다가 비속어 논란 등이 발생한 이후인 23일 기준으로는 32.8%까지 떨어졌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한 협박 정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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