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를 사수하라”…내란의 밤, 국회를 지킨 또 다른 이름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던 얼토당토 않은 내란 시도부터 대통령 탄핵소추, 수사와 탄핵심판을 둘러싼 갈등에 이르기까지 고작 달포의 시간은 내란 주동자들을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를 남길 것이다.
역사의 순간, ‘어디에 서 있었느냐’는 핵심적인 문제다. 12월4일 새벽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해 내란을 막은 여야 국회의원 190명, 12월14일 오후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찬성해 내란 세력을 심판하라는 민의를 받든 여야 의원 204명은 설 자리를 알았던 정치인들이다. 가장 깊은 밤, 어둠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뜻 하나로 민첩하게 국회 앞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용기는 ‘경이’라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국회의원과 시민들만이 아니다. 내란의 밤, 자신이 서야 할 곳을 잘 알고 달려와 지켰던 이들은 부지기수다. 내란 세력의 간절함보다 이들의 간절함이 컸기에 ‘극악무도’한 내란 시나리오는 망상에 그쳤을 것이다.
“국회의장과 발전기를 지켜라” 국회 사무총장 김민기
그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국회는 일사불란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각광을 받았다. 좋은 리더의 곁에는 좋은 참모들이 있게 마련이다. 국회와 야당 관계자들은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그날 밤의 숨은 주역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용인 지역에서 민주당 3선 의원을 지낸 김 사무총장은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했으나, 우 의장의 요청으로 국회 사무처의 수장을 맡게 됐다.
12월3일 밤 10시33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우 의장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이도 김 사무총장이다. 그날 저녁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무알콜’ 만찬을 가진 뒤 오랜만에 일찍 휴식 중이던 우 의장은 “지금 바로 국회로 가셔야 한다”는 그의 연락을 받고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이후부터 사무처의 대응은 일사천리였다. 마치 ‘계엄 2회차’라도 되는 것 같았다. 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김 사무총장이 ‘밀덕’(밀리터리 덕후·군사 또는 무기 등의 정보에 빠삭한 이를 이르는 말)인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전했다. 학군단 출신인 김 사무총장은 초선부터 3선까지 내리 간사·위원장까지 맡으며 국회 정보위원을 지냈고, 3선 때는 국방위에서도 활동했다.
특히 정보위에서 ‘조현천 문건’으로 불리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계엄 문건’과 계엄법을 여러 차례 숙독했다는 전언이다. 그런 탓에 내란 전에도 김 사무총장은 참모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주 “계엄이 터지면 의장님은 국회로 모시거나 미 대사관으로 가셔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12·3 내란사태 당시 김 사무총장의 머릿속엔 이미 ‘컨틴전시 플랜’(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계획)이 내장돼 있었던 셈이다.
“이놈들이 투시경 켜고 불부터 끌테니 발전기를 지켜야 한다.” 계엄군의 헬기가 도착하는 것을 확인한 김 사무총장은 실무자들에게 지시했다. 실무자 일부가 발전기 사수에 나섰다.
“의장님은 의장실에 계시면 안 된다. 5층으로 모시자.” 계엄군이 계엄 해제를 막으려 우 의장 신병부터 확보할 게 분명했다. 김 사무총장 등의 요청에 따라 우 의장은 본회의장에 계엄 해제를 위한 가결 정족수(151명)의 의원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 때까지 3층 집무실 대신 5층의 전문위원실에 몸을 숨겼다. 실제로 우 의장은 계엄군의 ‘체포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김 사무총장은 국회의사당 불을 모두 점등하라고도 지시했다. 어느 방에 의장이 있는지 숨기기 위한 ‘교란용’이었다.
나중에 사태가 안정된 뒤 우 의장은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사무총장을 진짜 잘 뽑았어.”
당직자 ‘월담지원조’, “우리가 정신차려야” 호소한 고참 보좌관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정신 차려야 돼요. 군인이 건물에 들어오면 상황이 종료될 수 있습니다. 긴박하게 생각하고 움직여 주세요.”
계엄군이 엄습하던 그날 밤,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여든 보좌진과 당직자를 향해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외쳤다. 2016년 민주당보좌진협의회장을 지낸 윤상은 보좌관(정을호 민주당 의원실)이다. 베테랑 보좌관인 그는 모여든 동료들에게 “열 분 정도는 정문으로, 열 분은 후문으로, 열 분은 각각 옆문으로 나눠서 가달라”고 호소했다. “방호과 직원들이 있지만, 드넓은 본청 건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 보좌진들의 활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국회선진화법(2012년) 이전 ‘동물국회’까지 두루 경험한 이들은 야전에서 싸우는 법을 지독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계엄군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생 김가미 비서관(강선우 민주당 의원실)은 그날 밤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잠들었던 김 비서관은 함께 사는 언니가 흔들어 깨운 뒤에야 일어나 “계엄이 선포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뒤늦게 국회에 도착하니 사방은 이미 경찰기동대에 막혀 있었다. 김 비서관을 비롯한 일동은 서로를 넘겨주고 받아주며 망설임 없이 담장을 넘었다.
계엄이 해제되고 내란 세력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야 김 비서관은 손가락이 부러진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를 담장 위로 끌어주다 부러진 것이었다. 영광의 부상을 입은 김가미의 이름은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각주 형식으로 올랐다. 나중에야 탄핵소추안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신 분들이 많은데 제 이름이 올라간 게 너무 민망했다. 하지만 울컥했다”고 말했다.
많은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으로부터 국회를 지키기 위하여 월담을 했고, 강윤호, 강태영, 권영근, 김가미, 김대훈, 김석태, 김영표, 김윤호, 김재훈, 김지훈, 문서영, 박규태, 박기일, 박준수, 오가인, 유현제, 윤여길, 이경은, 이동기, 이상엽, 이승환, 이시성, 이주원, 이주헌, 이혜인, 장대연 등 국회보좌진은 월담 및 계엄군, 경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쳤다. 이 외에도 수많은 국회 직원들이 국회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일부-
김 비서관의 말처럼, 탄핵소추안에 기록된 것처럼, 그날 국회와 정당의 수많은 직원들이 국회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민주당 뿐 아니라 야당의 몇몇 의원들도 자발적으로 ‘월담 지원반’을 꾸린 민주당 당직자들의 도움으로 담을 넘어 표결에 참여했다. 거구의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민주당 당직자들의 도움으로 담장을 넘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안팎 숱한 이들의 노력으로 12·3 내란을 지나 12·14 탄핵에 이르렀다. 온국민이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여전히 “나라 안팎의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윤 대통령)고 말하는 내란 우두머리가 있고, “지역 가면 욕도 먹겠지만 각오하고 얼굴을 두껍게 다녀야 한다”(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고 말하는 여당 지도부가 있다. 상식을 가진 국민은 내란 동조 세력에 아직 묻고 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고, 이제 어디에 설 것인가.’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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