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포격 막아라".. 폴란드, 러시아 포병 맞상대로 'K-9' 찍었다 [박수찬의 軍]
지난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1세기 전장의 전망을 한순간에 바꿨다.
냉전 종식과 옛 소련 붕괴로 유럽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위험은 낮다는 판단이 힘을 얻었다. 궤도형 자주포나 전차 대신 트럭 탑재 자주포와 지뢰방호장갑차 등 국지전과 해외 분쟁 개입에 적합한 장비들이 주목받았다.
이같은 인식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중화기 급구’를 외치는 국가가 늘어난 것이다.
이후 지난달 말 K-9 자주포 212문을 도입하는 1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독자적인 자주포 ‘크랩(KRAB)’을 보유한 폴란드가 극동의 먼 나라에서 자주포를 급하게 들여올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거세게 불어닥친 셈이다.
◆폴란드는 K-9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폴란드는 러시아산 2S1 122㎜ 자주포를 서방 규격인 155㎜ 자주포로 교체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물이 크랍 자주포다.
토파스(TOPAS) 사격통제체계를 비롯한 전자장비는 폴란드산으로 채워졌다. 차체도 폴란드산이었지만, 고장이 거듭되면서 한국산 K-9 자주포 차체로 교체했다.
분당 6발을 사격하며, 사거리는 30~40㎞다. 기본적으로는 K-9A1 자주포와 유사한 성능이다.
폴란드는 122문의 크랍 자주포를 생산해 운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크랍 자주포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뀐다.
당시 폴란드가 생산한 크랍 자주포가 80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폴란드군 보유 물량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넘어간 셈이다.
동부 돈바스 전투에서 크랍 지주포를 투입한 우크라이나군은 성능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위성항법체계(GPS)를 갖춰 옛소련의 152㎜ 곡사포나 자주포와 달리 사격 정밀도가 높고 안전하며, 사격 후 신속하게 진지를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폴란드였다. 지난 5일 크랍 자주포 48문과 지휘차량 등을 추가 주문했지만,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지원해야 하는 소요와 더불어 폴란드군 배치 물량을 단기간에 메우기는 쉽지 않다.
크랍 자주포 포탑 원형인 AS-90을 개발한 영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영국은 기동화력체계 증강을 위한 MFP(Mobile Fires Platform) 사업을 통해 100여 문의 최신 자주포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AS-90은 2030년대 초를 전후로 퇴역할 예정이다. 폴란드로서는 성능개량이나 유지 보수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북한군과의 대규모 포격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덕분에 실전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K-9은 포탄 장전, 장약 삽입, 격발에 이르는 전 과정을 15초 이내에 하면서 포탄 3발을 쏘는 급속사격이 가능하다. 발사 각도를 조정하면 3발의 포탄을 표적에 동시 탄착(TOT)시킨다. 이같은 능력을 통해 2문으로 6문이 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자체 자동 방렬 및 사격 제원 산출이 가능한 K-9은 이동하는 도중에 사격명령을 받고도 60초 이내에 포탄을 쏘는 긴급사격도 가능하다. K-10 탄약운반장갑차를 통해 신속한 탄약재보급도 이뤄진다.
K-9은 K-9A1→K-9A2로 이어지는 성능개량 로드맵도 갖추고 있다. 최종 진화형인 K-9A2는 자동장전장치와 복합소재 고무궤도, 원격사격통제체계 등을 탑재해 화력과 방호력, 기동성, 생존성 등이 대폭 강화된다. 분당 발사속도는 기존 6발 대비 1.5배 늘어나며, 탑승 병력의 숫자도 기존 5명에서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반면 서방국가의 경쟁 기종들은 성능개량 계획이 구체화하지 않았거나 개발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크랍 자주포 차체를 통해 K-9의 기술 수준을 접한 폴란드로서는 K-9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K-9을 비롯한 고성능 자주포 대량 배치는 평야에서의 장거리 포격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탁 트인 평야에서는 곡사포가 은신할 곳이 없다. 포탄의 궤적을 추적하는 대포병레이더 운용을 감안하면,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포탄을 쏜 뒤 신속하게 이탈해야 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사격 정확도와 기동성이 우수한 고성능 포병전력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에 적군의 위치를 드론으로 먼저 파악한다면,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진다.
지난 2020년 2월 시리아 이들립에서 튀르키예군이 실시한 작전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립에 있는 반군을 공격하고자 대규모 기계화부대를 투입했다.
수집된 정보는 ‘GIS 아르타’를 통해 공유된다. 우버가 승객과 인근 운전자를 연결하는 승차 호출 기술과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목표 식별에서 공격까지 걸리는 시간을 20분에서 1분으로 줄여준다.
여기에 미국이 공여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과 M777 155㎜ 견인 곡사포, 영국과 이탈리아 등이 제공한 FH70, 프랑스산 케사르 차륜형자주포, 폴란드산 크랍 자주포와 기존에 보유한 러시아산 야포 등을 결합해 포격전을 벌였다.
이를 통해 지난 5월 8일 시베르스키도네츠크강을 건너던 러시아군을 포격해 전차·장갑차 70여대를 파괴하고, 1000여명 규모의 대대급 병력을 전멸시켰다.
러시아군의 강력한 포병 화력에 직면한 폴란드도 튀르키예, 우크라이나의 전례를 참고할 가능성이 있다.
외신에 따르면, 폴란드군은 지난해 초 러시아군의 침공을 가정한 워게임 ‘윈터(Winter)-20’을 실시했다.
폴란드 육군이 국토를 가로지르는 비스툴라 강 동쪽 지역을 22일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 워게임에서 러시아군은 개전 4일차에 수도 바르샤바 포위에 성공했고, 5일차에서는 비스툴라 강 동쪽의 폴란드군은 사실상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인기 도입도 한창이다. 폴란드는 앞서 지난해 5월 튀르키예에서 바이락타르 무인기 24대를 구매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는 미국산 MQ-9 리퍼 무인기 도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무인기와 드론 전력이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드론을 관측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고성능 자주포로 장거리 정밀포격을 하는 것은 적군을 시가지로 유인해서 근접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피해가 훨씬 적고 강력한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다.
K-9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갖추고 있고, 성능개량도 진행중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개념의 포격전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폴란드 외에도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받을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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