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받던 일자리'는 옛말, "군인은 이젠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2. 8. 13. 06:01 수정 2022. 8. 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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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은 오랜 기간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관학교에 진학하면 학비 부담 없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임관을 했다. 부사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이른 시기에 직장인으로서 활동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같은 기조는 최근 들어 후퇴하는 모양새다. 역대 정부는 하나 같이 군 간부 복무여건과 병영문화 개선을 외쳤지만, MZ세대에 속하는 초급간부들의 직업 선호도나 군 복무 만족도는 높지 않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공수기본 강하 훈련을 하기 위해 CH-47 기동헬기에 탑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초저출산 사회에서 청년 인재를 군에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부사관 모집 과정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인공지능(AI) 과학기술군 건설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군사혁신 4.0에 맞춰 군의 인적 자원 관리와 병역 제도 전반에 대한 재설계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직업으로서의 군인은 ‘글쎄’

첨단과학기술군으로 한국군을 재편하려면, IT분야에 익숙한 고학력 청년 다수를 직업군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군 장비 중 전자장비나 기계 비중이 높고, 병사 복무기간이 18개월(육군 기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첨단장비를 효율적으로 쓰려면 간부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복무중인 초급간부들의 군 생활 만족도나 직업 선호도가 높아야 한다. 
대구 육군 50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영화계에서 관객들이 입소문으로 검증된 영화인 ‘똘똘한 한 편’에 쏠리는 것처럼, 군복무를 먼저 경험한 초급간부들의 인식과 입소문이 좋다면, 직업군인을 선택할 청년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복무한 지 5년 미만인 초급간부의 인식은 어떨까.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규현 선임연구원과 남보배 위촉원이 9일 발표한 ‘MZ세대 간부의 군 복무여건 진단과 개선’에 따르면, 2021년 7~8월 초급간부 57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 군생활 만족도는 2019년 59.4%에서 2021년 46.1%로 떨어졌다.

입대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군인을 지원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긍정적 답변은 2019년 70%에서 2021년 57%로 줄었다. 

지인에게 군인을 직업으로 추천할 것인지는 긍정적 답이 50.9%였다. 현 소득 수준에 만족하는 비율은 32.5%에 그쳤다. MZ세대 입장에선 군인이 직업적 측면에서 선호도와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수년간 부사관 충원이 목표에 미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2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각 군 부사관 모집 목표에 미달된 인원 규모는 2017년 1만2200명, 2018년 1만4300명, 2019년 8100명, 2020년 1만400명, 2021년 9700명에 달했다.
육군 장병들이 워리어플랫폼을 착용한 채 전투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현상은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1주에 40시간 일하면 최저임금 월 환산액은 191만4440원. 하사 1~8호봉(170만5400원~190만9800원), 중사 1~2호봉(179만1100원~188만3200원)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낮다. 

장교도 소위 1~2호봉(175만1600원~185만4800원)은 최저임금보다 낮고, 중위 1호봉(191만6700원)도 최저임금과 별 차이가 없다. MZ세대의 직장 선택 기준 1위가 연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상황은 개선이 시급하다.

급여 문제는 수당이나 보조금 인상 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 사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군 조직 문제를 풀지 못하면, 급여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 조직들이 개인 생활과 가치관 존중, 일과 후 삶의 중시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군은 위계질서와 집단주의 등으로 사회 변화에 대한 대응이 빠른 변화 속도에 익숙한 MZ세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MZ세대가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을 꺼리면, 간부 구성의 질적 향상 측면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원을 채우고자 예전에는 받지 않았던 인원도 초급간부로 채용하게 된다. 장기복무에 대한 선호도 떨어지면서 우수 인재를 군에 남게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육군 차륜형장갑차와 무인전투차량이 유·무인복합체계 시범을 보이기 위해 훈련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IDA는 “군의 업무 특성과 대비태세에 따른 불시업무, 과도한 업무량, 경직된 문화 등의 제한점은 여전한 상황”이라며 “군과 사회제도 및 인식과 간극 사이에서 관련 제도와 문화의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 시대 걸맞는 군 인력 운용 재설계 필요

군 당국이 이같은 문제를 방치한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는 일·가정 양립정책, 자유로운 휴가 사용 등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하지만 군인에 대한 직업 선호도는 최근 수년간 떨어지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군 인력 운용을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초급간부로서 복무해야 한다. 20대 초중반의 초급간부는 군 간부 중에선 하급자이자 병사의 상급자다.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업무 부담도 크다. 

민간보다 급여는 낮고 업무는 많으며, 조직 문화나 가치관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대인 관계에서 첫인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듯, 직업군인에 대한 인식도 초급간부 시절에 형성된다. 초급간부의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육군 장병들이 대대급 무인정찰기를 띄우기 전에 관련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현 정부가 추진중인 국방혁신 4.0에서 인력 구조에 대한 언급은 현재까지는 없다. 첨단장비를 다룰 간부를 확보하고 운용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면 혁신은 무용지물이다. 

이와 관련해 병사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간부 모집이나 증원이 어렵다면 병사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 초급간부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산악이 많은 한반도에서는 소부대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부대 전투의 핵심은 20대 초중반의 초급간부와 병사다. 초급간부와 병사가 전투력과 의사결정 등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중·소대장이 전사한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다. 초급간부도 병사도 소대 또는 분대단위 전투를 구상하고 지휘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국방혁신 4.0에 의해 한국군이 첨단과학기술군으로 바뀌는 것도 이같은 특성을 강화한다. 첨단 IT 장비와 초연결 네트워크, 인공지능으로 전장을 운용한다면, 초급간부와 병사는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과거에는 초급간부와 병사가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서로 차이가 있지만, 모든 전투원이 개인 단말기를 휴대하는 첨단과학기술군에서는 다르다.

정보가 늘어나고 전장의 변화 속도는 훨씬 빨라지면 최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는 어떻게 될까. 
육군 장병들이 시가지 전투훈련 도중 드론을 띄워 정찰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거보다 병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대처해야 할 상황도 기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휘통제 등의 분야에서 병사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병사의 역량을 키운다면, 초급간부를 더 많이 도울 수 있다. 심지어 초급간부가 최전선에서 교전할 때 숙련된 병사가 지원을 할 수도 있다. 전투 외에 교육, 행정 등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군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다. 민간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군인들은 국가 발전의 선봉에 서서 변화를 이끌었다. 

이제는 다르다. 군은 민간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부사관 모집이 정원에 미치지 못하고, 초급간부들의 군생활 만족도와 직업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싸우는 법을 비롯해 조직 문화와 업무 효율성 개선 등을 빠르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존의 병영문화 개선책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군 조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초급간부와 병사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지 않으면, 군 조직에 활력을 줄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해도 전쟁은 여전히 사람이 치러야 할 영역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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