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신음하는 런던의 생명들을 위하여

한겨레 2022. 6. 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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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청년의 런던 견문기][기후정책][기후 청년의 런던 견문기 ⑩·끝]
자연사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시민과학 프로젝트. 박소현씨 제공

세계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런던은 900만명이 넘는 사람들과 1만5000종 이상의 동식물들이 사는 밀집된 서식지다. 국립공원도시로 지정된 런던에서는 청설모와 앵무새를 흔하게 볼 수 있고 한적한 거리 위에서는 심심찮게 붉은여우를 발견할 수 있다. 도심 안에 조성된 공원에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것 같다.

이처럼 런던은 도시와 자연이 상생하는 듯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도심 속 자연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공해와 기후변화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런던의 최고기온은 32.7도를 기록했고 이미 세 번 내려진 폭염주의보는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여름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기후변화는 온도 변화에 민감한 야생동물의 개체수와 생물종 분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국의 비영리기관, 연구소 등 70여 개 기관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스테이트 오브 네이처(State of Nature)에 따르면 2019년 영국의 생물종은 1970년대와 비교해 41%가 감소했고 절반 이상의 생물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특히 기온이 오르면서 철새들의 이동시기와 번식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제비의 이동시기는 15일 앞당겨졌고 박새는 1968년보다 평균 11일 일찍 알을 낳는 것으로 관찰됐다. 바닷가에서는 세가락 갈매기의 주요 먹이인 까나리가 줄어들면서 개체수가 1968년과 비교해 70% 감소했다. 런던에서는 미슬지빠귀, 찌르레기, 박새, 검은다리솔새가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짧아진 겨울과 일찍 찾아온 봄에 식물들은 일찍 개화하고 일찍 성장을 멈추고 있다. 빠른 개화는 늦게 나온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시기를 놓치거나 빨리 땅에서 나온 벌레들이 철새들이 오기 전에 번식하면서 생물들 간에 출현 시기가 어긋나고 있다. 먹이가 사라지면서 개체 수가 줄어들자 날지 못하는 아기새들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커지면서 먹이사슬은 점차 불균형해지고 있다. 먹을거리가 없는 새들에게 무더운 여름으로 딱딱하게 건조된 땅은 새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봄에 일찍 개화하여 여름 끝물이나 가을의 시작에 생장을 멈춘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능력이 떨어지면서 탄소 배출이 늘어나고 있다. 생태계의 붕괴는 곧 인류의 건강과 식량 안보의 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런던을 포함한 일부 도시들은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자연사 박물관 시민과학 프로젝트인 녹지 확대 찬성 프로젝트 갈무리. 박소현씨 제공

영국 의회에서는 기후와 자연을 위해 야심 찬 목표를 촉구하는 ‘기후와 생태비상사태 법안’이 발의되어 영국 하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이미 런던의 지역구인 해머스미스 풀럼구와 캠던 타운은 생태비상사태를 선언한 바 있다. 런던시 차원에서는 런던 환경전략에 따라 녹색 지붕과 공원 조성 및 공원 생태복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도시와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런던에 약 4500㏊의 녹지를 소유하고 있는 런던의 특별자치구인 시티오브런던은 생물다양성 행동계획을 통해 소유지와 자치구역 내 인공 새 둥지를 설치하고 서식하는 생물종 데이터 수집과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은 주위 자연환경의 변화를 관찰하고 보고하여 과학연구에 도움을 주거나 집 주변에 도시 속 동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도시의 자연생태계 보호에 참여할 수 있다. 런던 야생동물 신탁협회(The Wildlife Trust)와 자연사박물관의 시민 과학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소소하지만 자연사박물관은 시민들이 새를 위한 욕조를 만들고 인공 벌집 짓기 등의 활동들이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 도시에 살면서 함께 살고 있는 땅 밑 생물과 식물들의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고 척박한 도심 속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은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도시에 찾아온 기후위기에서 인간의 독자생존이 아닌 도시 생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도시 성장정책이 필요하다.

박소현 런던대 대학원생(환경 전공)·유튜브 <기후싸이렌>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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