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 'ikr' SNS에서만 통하는 이 말..인터넷에서 언어는 진화했다 [Books]

김슬기 2022. 6. 24. 17: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 그레천 매컬러 지음 /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펴냄 / 1만9000원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언어의 역사에서 오늘보다 더 격변의 시기는 없었다. 우리는 글쓰기의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고 있다.

서기 800년 사를마뉴 대제는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다. 법령을 대신 써줄 필경사들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쓴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자메시지와 채팅, 인터넷 게시물은 수천 년간 써온 어떤 글이나 책과도 다르다. 구어에 가깝고 빠르게 작성되며,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다. SNS를 통해 글의 격식이 사라졌다.

인터넷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그레천 매컬러는 이 책에서 언어가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온라인 공간의 무한한 창의성과 이모저모에 대해서 '진지한' 연구에 도전했다. 저자는 거듭해서 "글로 쓰인 언어의 숨겨진 패턴을 분석하면 우리가 쓰는 일반적 언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언어학은 일상 언어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준다.

인터넷에서 탄생한 비격식 언어는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최초의 문자 체계는 단어만을 사용하며 기억을 돕는 기능만 있었다. 문장부호가 등장하며 글에 미묘한 느낌을 더했고, 인터넷 언어는 웃음, 울음 같은 이모지까지 더하며 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언어학은 자료 수집을 위해 발화 분석과 음성 녹음이 필요한 '노가다' 작업을 요하는 학문이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쥘 질리에롱과 연구자 에드몽트는 1900년대 4년 동안 프랑스 마을 639곳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인터뷰한 끝에 방언 지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트위터의 검색 기능은 특정 단어나 표현을 찾을 수 있고, 이용자의 1~2%는 지리적 좌표를 태그로 달기까지 해 언어학자들의 보고가 됐다. 예를 들어 트위터를 통해 'bae'(babe의 약어로 애인을 뜻함)란 단어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의해 사용되다가 2014년부터 백인들의 트윗에서도 나타난 뒤, 여러 상표에 흡수됐음을 알 수 있다. 'ikr'(I know right?, 내 말이, 그치?)란 약어는 디트로이트에서 인기가 높았고 'something'을 뜻하는 'suttin'은 뉴욕에서 인기가 좋았다.

언어 전파의 네트워크에도 특별한 경향성이 있었다. 트위터에서 인기를 얻은 200개 단어의 지리적 분포를 연구했더니 용어의 전파는 지리적 근접성뿐만 아니라 인구학적 유사성에 근거해 일어났다. 은어는 워싱턴DC와 뉴올리언스 사이에서 번지고, 라틴계 비율이 높은 로스앤젤레스(LA)와 마이애미에서 번지며 백인 비율이 높은 보스턴과 시애틀에서 번졌다.

트위터 사용자 1만4000명을 연구하자 성별보다는 집단의 차이가 크다는 결과도 도출됐다. 여성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모티콘을 더 많이 사용했고, 남성 이름은 욕설을 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자 주 사용 단어가 스포츠팬, 힙합팬, 부모, 정치 마니아, 영화 팬, 독서광 등 10개가 넘는 관심사 집단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스포츠 집단에 속한 여성은 평균적 여성이나 평균적 남성보다 동료 스포츠팬과 더 비슷한 단어를 썼다.

인터넷 이후 언어가 빠르게 변하는 이유도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레슬리와 제임스 밀로이의 연구에 따르면 언어 변화를 주도하는 건 젊은 여성들이다. 벨파스트에서 신조어를 빨리 접한 이들의 관계를 연구하자 얼리어답터에 속하는 젊은 여성들은 모두 시내의 같은 가게에서 일했다. 시내에 가까운 친구(강한 유대)가 없었지만 고객들과 약한 유대에 해당하는 접점이 있었고 새로운 말에 자주 노출됐다.

이는 아이슬란드어보다 영어가 빨리 변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덴마크와 노르만의 침략,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또 다른 도시로 이주한 전통, 제국주의적 팽창은 영어 사용자가 약한 유대를 만날 확률을 높였다. 약한 유대는 새로운 언어의 형태를 도입하고, 강한 유대는 도입된 형태를 널리 퍼트린다. 인터넷은 두 형태의 유대를 모두 아우른다. 모르는 사람을 폴로하도록 독려하는 트위터가 오프라인에서 이미 아는 사람과 주로 친구를 맺는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언어 혁신을 일으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글이 표정을 갖게 된 역사도 인터넷에 빚지고 있다. 감정 표현의 도구로 지금은 알파벳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이모지의 역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모지는 1982년 카네기멜런대 스콧 팔먼 교수가 컴퓨터로 의사 소통을 할 때 농담을 사용하려면 ':-)' 문자를 사용하자고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모지의 가장 큰 장점은 아프고 피곤할 때조차 예의 바르게 웃는 얼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메일, 블로그, SNS 등을 거쳐오며 인터넷 문화에서 탄생한 언어의 다채로운 풍경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언어를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인간의 능력으로서 언어는 매우 오래됐다. 언어는 기술 없이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언어의 변화는 인터넷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가속도를 얻었다. 불변의 사실은 세대마다 언어는 새롭게 만들어지며, 인터넷은 언어적 즐거움과 창의성의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언어의 진화와 혁신을 우리는 매일 키보드를 두드리며 목격하고 있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