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 내정 윤덕민 "강제징용, 한국정부 대신 변제도 방법"
윤석열 정부의 첫 주일대사로 내정된 윤덕민(63) 전 국립외교원장이 우리 정부가 일본과 오랜 시간 대립각을 세워온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대위변제’를 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언급했다.
윤 전 원장은 26일 일본 도쿄(東京) 데이코쿠(帝国)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의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석해 약 30분에 걸쳐 강연했다. 올해로 27회를 맞는 '아시아의 미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고 중앙일보 등이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하는 행사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현금화는 바라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윤 전 원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문 전 대통령이 조금 더 빨리 말씀해서 양국관계 악화를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를 더는 악화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해결안이 나왔는데 실행하지 않았던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언급한 것이 한국 정부의 대위변제다. 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한국 정부가 대신 변제 해주는 안이다. 그는 이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관련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재단을 만들어 배상을 지원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해당 재단에 일본 기업들이 참여하는 아이디어도 덧붙였는데, 윤 전 원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날을 세우고 있는 또 다른 과거사 문제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일본 측에서 이후 ‘돈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식의 발언이 나오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보상과 사과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치유를 위한 과정의 일환일 뿐인데도 일본 측에서 보상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문제였다는 해석이다.
북한의 비핵화, 국제사회 공조 필요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강연에서 북한이 지난 2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한 것을 언급하며 “과거 같았으면 국제사회가 단결해 대응하고, 국제연합(UN)에서 제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북한이 무서울 정도로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지만, UN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전역이 북한의 미사일 권역이 되고 있으며, 각 나라가 비핵화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비관적이 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윤 전 원장은 “이런 상황을 국제사회가 방치하면 확산의 도미노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며 “하드웨어적인 핵무기는 이미 개발에 성공해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파키스탄과 인도, 이스라엘을 언급했다.
북한이 바라는 것은 이들 국가처럼 핵보유국이지만 제재를 받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비핵화의 문제는 북핵을 바라보는 한·미·일 간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비핵화를 바라는데, 미국이 인도, 파키스탄 등과 한 딜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미국이 묵인해, 북한이 원하는 대로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제재 받지 않은 핵보유국이 되도록 둘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일관계 복원 힘쓸 것
윤 전 원장은 대사 내정자로서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이냐는 관중의 질문에 “잃어버린 한일 간 신뢰 관계와 네트워크를 되살리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강연에선 악화한 한일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비가 오는 날에도 일본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경험이 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한국과 일본 간 축구 경기 때 일도 언급했다. 한국응원단 앞에는 ‘지진 따위에 지지 말라’는 일본 응원 문구가, 일본 응원단 앞에는 ‘고맙습니다, 한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 걸린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믿지 못할 상황”이라면서 “하루라도 빨리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쿄=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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