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살 수 있구나'..최은영 '쇼코의 미소'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소개해드리는 시간, 오늘(3일)은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를 만나보겠습니다.
주인공 소녀가 일본인 친구를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작가는 꾸밈없는 솔직한 화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영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최은영/소설가 : "쇼코라는 일본 친구가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소유라는 아이의 집에 잠깐 머무르게 되는데요. 할아버지와 엄마가 쇼코를 굉장히 반겨주고 행복해하세요."]
일본인 쇼코와의 첫 만남 이후 엄마, 할아버지까지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가 갑자기 낯설어집니다.
[최은영/소설가 :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닌데...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쩌면 그냥 그분들의 일부분이었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돼요."]
차갑지만 어른스럽다며 '쇼코의 미소'를 동경하던 주인공의 감정은 그러나 이내 변합니다.
몇 년 뒤 일본에서 다시 만난 쇼코가 병약한 모습으로 자조적인 말을 내뱉자, 이번엔 정반대로 쇼코가 나약하다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느낍니다.
반복되는 만남과 어긋남은 주인공을 계속 변화시킵니다.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꿈이 좌절된 현실을 살아갈 땐 실패에 고통받지만,
[작가 낭독 :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 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언제나 응원을 보내주던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는 삶에 대한 태도를 고쳐잡습니다.
[최은영/소설가 :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이라는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병과 죽음을 통해 알게 되고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다시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쇼코를 다시 만났을 때 변한 건 '쇼코의 미소'가 아니라 자신이란 걸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작가의 이야기엔 이런 낯선 만남과 성숙의 상호 작용이 반복됩니다.
베트남전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 삼촌, 태어난 지 일주일된 아기였던 이모까지 한국군의 학살로 잃은 베트남 가족과, 군인으로 참전한 스무 살 큰삼촌을 잃은 한국인 가족이 독일에서 만나 '진실한 사과'를 이야기하고, 프랑스의 한 공동체 수도원에서 만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삶을 이해합니다.
[최은영/소설가 :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약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수용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나아짐이라고..."]
부끄러운 감정과 상처까지도 솔직히 전하려는 마음.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 깊은 울림을 준 건 바로 이 마음 때문입니다.
[안지영/문학평론가 :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야 되나요. 뭔가 기교를 쓰거나, 뭐 멋있어 보이려고 하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진심을 다해서 이 캐릭터들에게 마음을 담아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도 진심을 담아 독자에게 다가가는 젊은 작가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최은영/소설가 : "고독이 강요가 되다 보니까 힘들고 사람을 만나야 사람이 살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실제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KBS 뉴스 서영민입니다.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비평] 선한 분노의 힘 - 최은영 ‘쇼코의 미소’
- [인터뷰]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 “성공 말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
- [비평] 진정한 공감에 이르는 길 - 윤후명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 [인터뷰] 윤후명 작가 “나의 문학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 아름답고 처절한 ‘참회록’…윤후명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 [비평] 기억이 재현하는 삶의 실제…김원일 ‘마당 깊은 집’
- [인터뷰] ‘마당 깊은 집’ 김원일 작가 “솔직하고 진실하게 써야”
- 전쟁이 만든 10대 소년의 일기장…김원일 ‘마당깊은 집’
- [인터뷰] ‘여기 우리 마주’ 최은미 “코로나 시대, 여성들의 고립감 이야기하고파”
- [비평] 발열 없이 아팠던 전염병 시국 속 여성들 -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