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돈쭐에 유기견 대모 후원..'미닝아웃' 예상못한 혼선
‘유기견의 대모’ 배우 이용녀(65)씨를 돕겠다는 손길이 인터넷과 SNS에 이어지고 있다. 이씨가 홀로 운영해 온 유기견 보호소가 지난달 28일 불에 탔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틀간 벌어진 일이다. 경기 포천소방서에 따르면 포천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난 불로 유기견 80여 마리 중 8마리가 숨지고 소방서 추산 약 29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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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문의 급증, 카페 가입자 1000명 이상
이씨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번 돈으로 2003년부터 해마다 최대 100마리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구조하며 보호소를 운영해 온 사연을 알았거나,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의 후원 문의가 이어진 것이다. 한 네티즌은 “유기견을 위해 벌어놓은 돈을 다 쓰셨다고 하던데 마음이 정말 안 좋다. 소정의 지원금을 보내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다른 네티즌은 “자신보다도 유기견과 유기묘를 위해 살았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고 후원 의사를 밝혔다.
기존에 있던 ‘배우 이용녀 유기견 보호’ 카페는 가입자가 화재 이틀 만에 1000명 이상 늘어 2일 오후 3시 기준 7000명을 넘어섰다. 후원 문의가 잇따르면서 혼선도 빚어졌다. 카페에는 "후원 계좌번호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가입했다" "계좌가 맞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씨의 계좌 여러 개가 동시에 온라인상에서 확산하면서 일부 후원자는 “농협 계좌가 이용녀님 이름으로 안 돼 있다. 미덥지가 않다” “유튜브에 나온 계좌로 입금했는데 맞겠죠?”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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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감사하고 죄송해서 진땀 나"
이씨도 네티즌들의 반응에 고마우면서도 당혹스러운 심정을 나타냈다. 그는 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급하니까 제 계좌를 알고 있던 분들이 이를 올리면서 혼선이 생긴 것 같다”며 “제가 올린 건 아니다. 네이버 카페에 있던 친구가 SNS에 글을 올린 것 같은데 진땀이 난다.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고 죄송해서…”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17년 동안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힘들어도 저보다 어려운 분들도 많은데 어떻게 받나”라면서 “후원 계좌를 카페 바깥으로 알린 적도 없고, 사료 회사에서도 후원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장이 화재로 다 타서 은행에서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데, 앞으로 들어오는 후원금은 모두 화재 복구에 쓰이게 될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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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 바라는 ‘미닝 아웃’
이씨 후원에 나선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선한 영향력’을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 프랜차이즈점에 치킨 주문이 쇄도한 것과 유사하다. 이 업소는 점주가 형편이 어려운 형제에게 공짜로 치킨을 제공한 사실이 알지면서 '돈쭐 내주자'(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의미)’는 네티즌들의 치킨 주문이 쇄도했다.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소비로 실현하는 일종의 '미닝아웃'인 셈이다. 미닝아웃은 ‘미닝(Meaningㆍ의미)’과 ‘커밍아웃(Coming Outㆍ드러내기)’의 합성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언택트 시대에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 할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혼선이 생길 우려도 제기된다. 이씨의 경우, 후원자들이 이씨의 계좌가 맞는지 혼란스러워했고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기도 했다. 이씨는 “누군가 인터넷에 '후원 물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더는 받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고 하더라. 택배 배송도 이틀은 걸리는데 하루 만에 꽉 찼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상한 글들이 돌아다니니까 갑갑하다”고 말했다.
선의로 시작됐더라도 돈 문제가 개입되면 의도에 맞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건전한 통로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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