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도 아니고 도련님은 무슨" 성차별 호칭, 바꾸고 계신가요

한승곤 2021. 2. 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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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모이는 명절 '성차별' 의미 담긴 호칭
불합리한 호칭 '이제는 바꿉시다' 말해도 현실은 어려워
사진은 자료사진으로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명절 설날을 맞은 가운데 친인척 간 성차별적 호칭을 바꾸자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의 호칭 대신 `○○씨` 등의 이름을 부르고 시댁은 시가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할머니로 부르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이를 개선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정부도 나서 불평등한 가족 내 호칭을 바꾸자며 기준을 마련했지만 일가친척이 모인 상황에서 특히 며느리가 이런 주장을 하기란 더 어렵다.

가족 내 불평등한 호칭에 불만이 많다고 밝힌 직장인 김 모(27·여) 씨는 "시대가 바뀌어도 이런 호칭은 그대로 아닌가"라면서 "당장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매년 명절이면 호칭 개선을 하자고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어려운 것 같다. 그냥 조선시대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 직장인 이 모씨 역시 탄식을 하며 "집안 가풍도 있지 않나,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관련 뉴스가 나와도 집안 분위기가 먼저일 것 같다"고 토로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성차별적 호칭이 바뀌는 시대상에도 가족 분위기에 따라 이를 제대로 개선할 수 없거나 아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시민들의 불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9월 명절(추석)을 맞아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형수님 도련님 대신 이름을 불러야 하고 집사람은 배우자로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서울시민 1803명이 의견을 제안했으며, 이 중 여성이 1194명으로 66.2%를 차지했다. 남성은 609명이 참여해 33.8%를 기록했다.

제안에 참여한 30대 남성은 `형수님들, 도련님이라 부르시지 말고 00씨라고 불러주세요. 호칭의 불평등을 바로 잡아요`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30대 남성은 `처가, 시댁 말고 처가, 시가로 불러요. 말 한마디라도 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요`라고 강조했다. 제안에 참여한 한 20대 여성은 `친할머니, 외할머니 말고 할머니로 똑같이 불러요`라며 가족 호칭에 있어 불평등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친가, 외가 → 아버지 본가, 어머니 본가 ▲집사람, 안사람, 바깥사람 → 배우자 등의 시민제안도 제시됐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시민이 계획하는 성평등 명절 모습`이라는 문항(주관식, 복수 응답)에는 `명절 일과 육아, 운전은 나눠서 해요`라는 응답이 37.0%를 차지했다. `명절 모임은 만나지 말고 통화로 해요`라는 응답은 30.4%를 기록했고, `차례상은 간소하게 차려요`는 18.6%의 응답률을 나타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또한, 성평등한 민주사회와 여성대중운동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1987년 설립한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사회 관습적인 호칭 속에 우리가 잘 몰랐던 여성 비하적이고, 성 차별적인 뜻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며느리`는 기생(奇生)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남존여비 사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올케`는 `오라비의 겨집(계집의 옛말)`에서 유래한 호칭으로 역시 여필종부(아내는 반드시 남편에게 순종하여 좇아야 함)의 문화를 반영한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 역시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으로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 민우회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여성 인권 단체와 정부의 권고에도 성평등 호칭은 여전히 갈길이 멀어 보인다. 앞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집안 가풍은 물론 고유한 가족의 분위기로 인해 호칭 변경 주장을 쉽게 못하는 것은 물론, 며느리나 올케 등 입장에서는 사실상 더욱 말을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안 어른이 먼저 나서 가족 간 호칭 성차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40대 회사원 이 모(40·여) 씨는 "결국 소통이 문제가 아니겠냐"라면서 "설날 등 명절이면 호칭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어른이 먼저 얘기를 꺼내주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요즘은 좀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점차 개선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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