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길가라 상상도 못했다"..초등학교 앞 평범한 이발소 정체
10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삼삼오오 교문을 빠져나왔다. 교문 옆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서는 각종 퇴폐·변태 영업 등 학습과 학교 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는 일체의 시설 설치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사거리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한 이발소가 나온다. 별이 박힌 삼색기둥과 함께 ‘수면실’ 문구가 적힌 등이 나란히 돌아갔다. 이곳은 평범한 이발소가 아니라 지난해 성매매 등으로 적발된 유해업소다. 인근에 사는 40대 여성은 “누구나 다니는 길가에 있는 업소가 퇴폐업소일 줄 몰랐다”며 “건너편에서도 훤히 보이는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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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코앞 퇴폐업소 성업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은 학생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교육환경 보호구역을 규정했다. 여기 따르면 학교 경계 직선거리 200m 안에는 ‘절대 금지시설’로 관리하는 신·변종업소(유사성행위 등이 이뤄지는 유해업소) 등이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학교 주변 곳곳에선 멀쩡히 유해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 불법·금지시설은 220곳이다. 이중 절대 금지시설은 신·변종업소 66곳, 성기구 취급업소 9곳 등 75곳이다. 특히 경기도에 있는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 절대 금지시설 27곳(신·변종업소 24곳, 성기구 취급업소 3곳)은 지난해 불법시설 현황에 포함됐다. 이들 업소는 적발된 뒤로도 여전히 학교 주변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마사지 등 신·변종업소는 단기간에 없어지지 않는다. 경찰·지자체와 맞물려 단속해야 하는데, 성매매 관련 현장을 잡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며 “확인 후 지자체에 정화 요청을 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주변 불법시설이 성행하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2월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올해 상반기까지 해당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248명. 이 중 징역·금고·구류 등 자유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명(0.1%)에 불과하다. 대부분 벌금형(58.5%)과 집행유예(21.8%)를 선고받았다. 이 의원은 “청소년 유해성이 심각한 신·변종업소, 성기구 취급업소 등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주변 유해업소 때문에 정작 아동·청소년에게 필요한 시설이 들어서지 못할 수 있다. 현행 아동복지시설 설치 기준에 따르면 시설 주변 50m 안에 청소년 유해업소가 있으면 지역아동센터를 설치할 수 없어서다. 전구훈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유해업소는 쉽게 생겨나지만, 이 업소들 때문에 지역아동센터를 짓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동·청소년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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