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대책 이후, 재건축 어찌 되나
[경향신문]
안전진단 요건 강화… ‘2년 이상 실거주’ 규정도 마련
지난 6월 17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6·17부동산대책)’의 후폭풍이 거세다. 전문가들이 “다양한 규제가 혼합된 백화점식 대책”이라고 표현할 만큼 6·17대책에선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문제들을 두루두루 손댔다. 대책 발표 직후 갭투자 차단과 이에 얽힌 전세대출 규제를 놓고 ‘실수요자 피해’ 논란이 한바탕 일었다. 최근에는 규제지역 지정에 대한 형평 문제를 놓고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다른 논란에 가려져 있지만, 6·17대책에서 비중 있게 겨냥한 것 중 하나가 재건축 시장이다. 하반기부터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본격 적용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의 합헌 결정에 따른 재건축 부담금 징수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여기에 6·17대책으로 꺼내든 규제카드가 더해져 한동안 재건축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실거주 못 한 집주인들 ‘발등에 불’
6·17대책에서 재건축 시장 규제 카드는 재건축 요건을 통과하기 위한 ‘첫 관문’인 안전진단 요건을 강화하고,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2년 이상 실거주’라는 요건을 충족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안전진단 요건 강화에 나선 건 서울 강남에 이어 목동도 사업 추진에 나서는 단지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 발표 며칠 전 목동 6단지의 안전진단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아파트의 호가가 수억원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9단지 역시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황이라 목동 재건축 시장에 막 불이 붙을 시점이었다.
정부는 일단 6·17대책을 통해 현재 관할 시·군·구로 정해진 1·2차 안전진단 기관을 시·도로 상향 변경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민원문제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보니 기초지자체에 안전진단을 통과시키도록 하는 압력요소로 작용한다”고 했다. 시·도가 관할할 경우 안전진단이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 추진부터 통상 9~10년을 바라보는 재건축 사업 기간이 10여 년 이상으로 늘 수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에 부담이 된다.
서류심사 위주였던 2차 안전진단도 현장조사를 의무화했다. 현행 규정으로도 2차 안전진단 시 현장조사가 필요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관행을 없앤 것이다. 현장조사가 지연되는 사업장은 안전진단을 ‘미완료’로 처리해 사업에 제동을 걸 방침이다. 2차 안전진단 결과가 타당한지 검토하는 자문위원단 심사도 강화된다. 안전진단기관에 대한 처벌도 강화돼 안전진단 보고서를 부실작성하는 기관에는 2000만원의 과태료와 1년간 입찰 제한이 부과된다.
조합원 자격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주택에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된다. 6·17대책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규제 중 하나로 꼽힌다. 반드시 연속해서 2년을 거주할 필요는 없고, 합산 거주기간이 2년 이상을 충족하면 된다. 실거주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사업이 본격화되는 청산 시점에 보유 주택을 감정평가액으로 팔고 나와야 한다. 청산 시점의 감정평가액은 사업 완료 후 시세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의 경우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집주인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강남 재건축의 ‘대장주’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체의 70~80%가 세입자가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마아파트는 가뜩이나 사업 추진속도가 더딘데, 2년 거주요건 때문에 사업에 더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정부는 임대사업등록자 등에 한해 일부 규제 적용면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일각에선 집주인이 실거주 의무를 채우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면서 ‘전세대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거주를 위해 세를 준 아파트에 들어간다 해도 기존 거주 주택은 다시 세를 주게 된다”며 “전세 총량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재건축 연한 40년으로 늘어날까
6·17대책의 재건축 규제가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 거론되는 또 다른 카드는 재건축 연한을 법적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재건축 연한은 본래 40년이었지만, 2014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30년으로 단축돼 운영 중이다. 근래 재건축으로 들어선 고가의 아파트가 집값 오름세를 주도해온 점을 감안할 때 재건축 연한을 다시 40년으로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재건축 연한을 늘리는 건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규제 확대에 따라 재건축이 과도하게 위축될 경우 주택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반복되는 규제로 시장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연한을 늘리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본격적인 ‘징수’를 공언한 재건축 부담금도 시장 위축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정부가 추정한 강남의 주요 5개 단지의 재건축 부담금은 조합원 1인당 4억8000만원이다. 많게는 7억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재건축 단지도 나올 예정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동산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수억원의 부담금을 져가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게 쉽지는 않다.
오는 7월 29일부터는 민간분양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상한제도 시행된다. 분양가 관리지역에 국한해 시행되지만,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가 있는 지역이 대부분 포함된다. 강남·강동·서초·송파 등 4개 구, 22개 법정동이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재건축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둔촌 주공 재건축이다.
둔촌동 일대에 총 1만2032세대, 일반분양이 4786세대에 달하는 둔촌 재건축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을지 말지를 놓고 조합(시공사)과 일부 조합원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분양가로 3.3㎡(1평)당 2978만원을 통보한 상태다. 이 가격을 받아들여 이달 내 분양에 나서자는 조합 측과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후분양에 나서면 더 높은 분양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조합원들이 갈등 중이다. 7월 9일 열리는 총회에서 결정이 날 전망이다. 대형 건설사들로 구성된 시공사 측은 후분양을 택할 경우 비용상승 문제 등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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