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헬멧 의무화'..사고 방지·보호 효과 '글쎄'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9월 말부터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자전거 인구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결단을 내린 것인데, 헬멧의 보호 효과에 대한 의문과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자전거 사고로 인한 환자 중 머리 부상자가 38%에 달하는데, 헬멧을 착용할 경우 머리 부상 정도가 8~17% 줄어들 수 있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를 언급하며 ‘자전거 운전자 및 동승자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연평균 3만 명 이상이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당했고, 사망자는 매년 100여 명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1340명) 가운데 헬멧 착용 여부가 확인된 941명 중 109명(11.2%)만이 헬멧을 쓴 것으로 조사된 데 따라 헬멧 착용 의무화 방안을 내 놓은 것.
그런데 헬멧을 쓴다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부상 정도를 줄일 수 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도시자전거 연구팀에 따르면 헬멧의 보호 효과는 자전거 운전자 홀로 넘어졌을 때 정도로 제한적이다. 자동차와 부딪혔을 때는 보호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마르코 테 브뢰멜스트룻 연구팀 소장은 “자동차 사고도 머리 부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자동차 운전자에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990년 이후 세계 최초로 자전거 헬멧 의무화를 전 주에 도입한 호주의 경우 관련 법안 도입 이후에도 자전거 사고로 인한 머리 부상자 수는 줄지 않았다. 헬멧 의무화 도입을 시도했던 캐나다 일부 주에서도 자전거 사고로 병원을 찾은 ‘머리 부상자’ 수에 조사한 결과 전후 변동이 전혀 없었다.
자전거 관련 규제는 오히려 자전거 인구 감소를 가져온다. 자전거 인구 감소가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미국 공중보건 전문가 피터 린든 제이콥슨은 유럽의 자전거 인구 변화와 사고 발생 빈도를 분석한 결과 자전거 인구가 많을수록 자동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낮다고 발표했다. 자전거가 많아야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더 잘 의식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전거 운전자들이 헬멧 착용으로 인해 안전 의식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즉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없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자전거 선진국인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자전거 헬멧 착용을 자유화하고 있다. 특히 8000만 인구 중 6500만 명 이상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독일은 지난 1970년대부터 헬멧 의무화에 대한 논쟁을 지속했지만, 여전히 규제는 하지 않고 있다. 헬멧을 반드시 써야 한다면 이에 불편함 혹은 부담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자전거 이용이 줄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시민 건강은 물론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 독일인들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대신 자전거 전반적인 문화와 인식에 대한 교육이 매우 철저하다. 독일은 초등학교 정식 교과목에 ‘자전거 교육’이 있을뿐더러 이론과 실기 시럼을 통해 면허취득도 해야 한다.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관련 법규도 세세하게 마련돼 있어 인프라도 이미 충분히 구축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멧 의무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에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동의하나 헬멧 의무화는 너무 이른 처사라고 지적한다. 자전거 관련 교육과 올바른 교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고,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됐을 때 헬멧에 대한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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