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한국이 지겹다

전수진 2017. 4. 7.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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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P-프로젝트팀 기자
욕심이 과하긴 했다. 인사 발령이 난 뒤 지난 3일 아침, 정든 기자실을 떠나는 내 손에 들린 가방은 캐리어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6층 기자실에서 검색대를 두 번 통과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모두 미련한 내 탓이지만 낑낑대면서 조금, 아니 많이 야속했다. 지나가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이. 내가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 가깝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헉헉대는 동료 시민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이가 ‘0’이라는 건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국 밖에선 안 그랬다. 지난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에선 “제가 도와 드려도 되겠습니까”라는 현지 신사가, 지난 2015년 뉴욕 JFK 공항에선 “지금 도움이 필요하죠?”라는 현지 여성이, 지난달 교토에선 “혹시 지금 곤란하신 상황이라면 도움을 드려도 괜찮으시겠어요?”라는 현지 (심지어) 할머니가 있었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선의가 살아 있었다. 대영박물관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보다, 교토의 흐드러진 벚꽃보다 이런 보통 사람들의 선의가 격하게 부러웠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치자. 한국은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도 팍팍하다. 지난 3일, 낑낑대며 새로 옮긴 곳에 짐을 푼 뒤 모바일 뉴스앱을 켜자 “한국에선 남 돕지 말라”는 외국인 부부의 사연이 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뛰어노는 아이에게 차량이 돌진하는 것을 발견하자 소리를 지르며 피하게 했다. 문제는 그 다음. 아이의 조부모가 “왜 내 손자에게 고함을 지르느냐”며 인종차별적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중재는커녕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발언”이라고 했단다. 이 뉴스를 접한 외국인 친구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영국인 친구는 “난 백인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피부색 갖고 다른 이를 재단하다니, 후지고 천박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향해 간다면서 국민의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타인은 무조건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사회, 팍팍하고 남에게 사납게 굴어야 손해 안 본다고 생각하는 사회,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정치 탓도 있지만 대한민국 5000만 국민 모두가 다 이 사회를 이렇게 후지게 만들었다. 남 탓 말고 내 탓을 하자.

지난해 10월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한국인으로 사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이젠 달라야 한다. 잃어버린 매력을 되찾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떠날 수 없는, 우리나라니까. 매력 없는 한국은 너무 지겹다.

전수진 P-프로젝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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