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정에서 구림의 법도를 되새기다
[한겨레]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구림마을이 달리 호남의 3대 명촌이었을까. 2006년 회사정에서는 '6·25 전후 구림지역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유가족들이 좌우를 떠나 '자발적'으로 '함께'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서로 위로하며 화해와 용서를 다짐했다.
18세기 담헌 이하곤은 이렇게 노래했다. "영암의 명승은 구림이요, 회사정 포구가에 높이 서 있네, 월출산 푸른 봉 첩첩이 이어지고, 송림에 부는 바람 사시사철 아늑하네…."
평지돌출의 월출산 천황봉은 그야말로 역발산의 기세다. 아득한 들판과 물결치는 구릉을 굽어보는 모습은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의 풍모요, 떠오르는 달빛에 어리면 비천상이 되고 중천의 달빛을 받으면 백제금동대향로처럼 빛난다.
그 뻗치는 기운이 굽이쳐 흐르다가 우뚝 멈춘 곳에 솟구친 것이 구정봉이요, 남은 기운이 북서쪽으로 흘러 노적봉, 남서쪽으로는 도갑산과 주지봉을 이룬다. 노적산과 도갑산 사이 홍계골에서 흘러내린 옥류와 도갑산과 주지산 사이 안바탕골에서 흘러내린 청류가 도갑사 일주문 밖에서 합수하여 구림천을 이룬다. 구림마을의 탯줄이요 젖줄이다.
구림천은 구림 열두 마을을 일일이 보살피며 상대포에 이른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떠나던 항구요, 향미 선사, 최치원 등 유학생들이 당나라로 떠나던 항구였다. 영산강 하구언에 바닷길이 막히면서 아름다운 서호와 비옥한 갯벌은 사라졌고, 구림은 주둥이가 막힌 청자매병 꼴이 되었다. 그래도 옛 영화를 전하는 게 있으니 정과 당과 사우.
이미 눈치챘겠지만, 마을 이름은 대개 정자에서 따왔다. 죽정, 학암, 동계, 고산, 신흥동, 평리, 남송정, 서호정, 백암정, 상대정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정과 당으로는 쌍취정, 간죽정, 회사정, 취음정, 총취정, 풍옥정, 요월당, 육우당, 삼벽당, 안용당이 있다. 여기에 마을마다 모정이 있으니, 30분이면 족히 둘러보는 이 작은 마을에 한 집 건너 정자고 당이고 사우다.
그만큼 구림의 물산이 풍부했고, 풍광이 수려했던 때문이리라. 그곳 사람들은 굳이 출세를 위해 고향을 나설 이유가 없었다. 월출산과 서호의 이름만으로도 당대의 문장가와 논객이 불원천리 찾아오는 터에, 애써 벼슬길에 나섰다가 당파에 휘말려 멸문지화를 자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열두 문중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거하며, 12개나 되는 문중서원(사우)을 지었다. 낭주 최씨의 국암사, 해주 최씨의 동계사, 함양 박씨 죽정서원, 창녕 조씨의 서호사 등은 사우의 규모가 서원 못지않다. '영남엔 서원, 호남엔 정자'라지만, 구림엔 사우와 정자가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마을을 대표하는 것이 회사정. 구림천이 감아도는 둔치에 세운 회사정은 웬만한 객사를 능가한다. 울창했던 송림은 일제가 대부분 벌채했고, 초현대식 미술관, 도기박물관 건물이 뒤쪽에 들어서 위세가 다소 옹색해졌지만, 주변에 즐비한 고가들은 회사정의 옛 위상을 웅변한다.
구림천 건너엔 창녕 조씨 종택과 사당 서호사, 쌍취정이 있고, 남송정 다리 건너엔 마을 경영의 중심 구림대동계사가 있고, 계사 담장을 끼고 돌아서면 육우당, 그 너머엔 남송정이 있다. 회사정 뒤로는 도선국사 탄생 설화가 있는 국사암이 있고, 서호정 국암사 덕성당 죽림정 간죽정 죽정서원 등이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동계사 삼락제 등이 모여 있다.
구림대동계는 조선 명종 20년(1565년)에 출범했으니 우리나라 최고의 대동계. 화민성속(백성을 교화해 아름다운 풍속을 이룬다)의 기치 아래 마을의 질서를 잡아왔다. 자체 재산도 상당해 사립 구림보통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런 대동계의 수계 행사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회사정이다. 구림청년계도 이곳에서 정기총회를 하는 특전을 누리는데, 그건 청년계가 3·1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회사정은 영암 3·1만세운동의 시발지였다.
한때는 걸터앉지도 못하게 했다지만, 지금은 서고 눕고 앉고 기대는 것이 자유롭다. 주민 한 분이 목침을 고이고 오수를 즐긴다. 날아가는 새들도 쉬어 갈 그 풍경 속에서 초행의 객도 몸을 뉘었다. 백헌 이경석과 간제 최규서의 '서호십경' 현판이 있다. 고산설매, 단교연류, 갑사만종, 월봉조람, 평호추월, 원봉낙조, 선암문학, 향포관어….
어느 순간 스르르 잠드는가 싶더니, 난데없는 비명소리와 함께 악몽 속으로 빠져든다. 1948년 여름 동계 마을 냇가였다. 미군정 경찰은 마을 사람을 모아놓고 열댓 살 소년을 총살했다. 월출산 빨치산이 된 마을 청년의 동생이었다. 무죄한 아이를 죽이고 이들이 남긴 건 이런 말이었다. "좌익 활동을 하면 가족도 이렇게 된다."
빨치산의 공세도 포악해졌다. 사흘이 멀다 하고 지서를 습격하고, 경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도갑사 주지를 죽이고 마을 주민도 살해했다. 토벌대의 행패는 더 심해졌다. 빨치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마을 어른을 주민 앞에서 발가벗기고 조리를 돌렸다. 주민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 이쪽저쪽의 요구에 응했을 뿐이었다.
6·25전쟁과 함께 구림은 골육상잔의 도가니가 되었다. 1950년 7월27일 경찰이 퇴각하면서, 보도연맹원들을 메밀방죽 위, 혹은 도갑산 골짜기에서 집단 학살했다. 인민군이 입성하자 유가족들은 경찰 가족 혹은 우익단체 관계자들을 죽였다. 10월2, 3일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공공기관 건물과 대동계사, 회사정을 전소시켰다. 잔존 빨치산은 7일 지와목의 한 주막에 우익으로 모함받은 사람들과 개신교도 등 28명을 몰아넣고 불 질러 몰살시켰다.
열흘 뒤 무장경찰 3개 소대는 구림을 주검으로 덮었다. 새벽 5시 마을을 완전히 포위한 뒤 보이는 대로 죽이고, 불러내서 죽였다.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였다. 학암에선 친정에 온 29살 주부가 칼에 찔려 죽었다. 알뫼의 17살 처녀는 살해된 채 신덕정 4거리에 버려졌고, 그 어머니는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채 죽었다. 또 다른 처녀는 개천으로 끌려가 옷 벗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했다. 고산마을에선 '죄 없는 사람은 나오라'는 경찰 방송에 속아 밖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그때 대나무 밭이나 마루 밑, 심지어 똥통에 목만 내놓고 있던 이들만 살아남았다.
경찰이 빠져나간 뒤 마을은 온통 주검 천지였다. 살아남은 자의 통곡과 오열만 남았다. 희생자만 92명(추계). "아무 잘못도 없는, 무장도 하지 않은 양민들이, 가족 친지가 희생당한 경찰의 분풀이의 제물이 되어 죽었다."(구림 마을지 <호남 명촌 구림>) 12월말엔 이웃 마을 출신의 신 중위가 사병 2명과 함께 구림에 들어와 동계리 최씨, 서호정 조씨 등 주민 13명을 막무가내로 트럭에 태워 끌고 가다가 배바위 근처 굴청에 밀어넣고 총살했다.
회사정은 이 모든 일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걸 모르고 대청에 누워 잠을 청했으니…. 객에게는 악몽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에게는 지금도 항상 되살아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구림마을이 달리 호남의 3대 명촌이었을까. 2006년 11월18일 회사정에서는 '6·25 전후(前後) 구림지역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희생자 유가족들이 좌우를 떠나 '자발적'으로 '함께'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서로를 위로하며 화해와 용서를 다짐했다. 그날 모신 192위 위패 앞에서 사랑과 화해의 징표로서 위령탑 건립을 다짐했다.
2010년까지 건립하기로 했던 위령탑은 아직 세워지지 못했다. 터도 마련했고, 마을 모금 목표액도 채워졌지만, 기대했던 영암군의 지원이 아직 없다. 오는 8월 마을 회의에서 규모를 줄여 세울 것인지 아니면 군의 지원을 재촉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굳이 정부의 참여를 기대하는 건, 남북이건 좌우건 권력은 적대의 선동자였고 학살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통렬한 반성이 없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재현될지 모른다. 이제 적어도 구림마을 희생자들 사이엔 벽이 없다. 2006년 이래 매년 10월17일 희생자들은 다 함께 위령제를 연다. 위패가 261위로 늘었다. 역사 앞에서 모두가 같은 희생자였고, 마을로서는 모두 형제자매였다.
18세기 담헌 이하곤은 '등회사정'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영암의 명승은 구림이요, 회사정 포구가에 높이 서 있네, 월출산 푸른 봉 첩첩이 이어지고, 송림에 부는 바람 사시사철 아늑하네. 마을 연기 대숲 밖 개울 건너로 퍼지고, 손끝으로 보이는 돛대 그림자 난간 사이를 스쳐 지나가네…." 권력의 간섭이 배제된 구림마을 회사정의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평화롭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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