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보순례] [95]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국립중앙박물관의 '실크로드와 둔황'전(4월 3일까지)을 다시 가보았다.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가 둔황에서 발견한 지 100여년 만의 귀국전인 것이다. 혜초의 생몰년은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8세기 전반, 20대 나이에 뱃길로 인도로 건너가 약 4년간 오늘날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등 다섯 천축 나라의 8대 영탑(靈塔)을 두루 순례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당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에 도착하여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왕오천축국전'은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의 성지순례기라는 점에서 세계불교사와 기행문학의 한 고전으로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받는 감동은 구법승(求法僧)으로서 혜초의 용맹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4편의 시로 읊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혜초는 달 밝은 밤이면 고향 계림이 더욱 그리웠다는데 어느 날 순례길에 티베트 승려를 만나서는 이렇게 읊었다.
"그대는 티베트가 멀다고 한탄하나/ 나는 동쪽으로 가는 길이 멀어 탄식하노라/ 길은 험하고 눈 쌓인 산마루는 아득히 높고/ 골짜기엔 도적도 많은데/ 나는 새도 놀라는 가파른 절벽/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는 건너기 힘들다네/ 평생에 울어본 기억이 없건만/ 오늘따라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
장안에 온 혜초는 계림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 밀교(密敎)의 제1조인 금강지(金剛智)와 2조인 불공(不空) 밑에서 경전의 편찬과 번역에 매진하였다. 불공은 유언에서 밀교를 이어갈 여섯 스님 중 두 번째로 혜초를 지목하였다. 그는 통일신라가 낳은 자랑스러운 당대의 글로벌 지식인이었다.
이 육필본이 과연 혜초의 친필인가엔 이론이 있지만 흐트러짐 없는 조용한 서체에는 스님의 높은 도덕과 따뜻한 인간미가 은은히 배어 있어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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