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줄게, 큰 집 다오’···재건축으로? 리모델링으로![올앳부동산]

류인하 기자 2024. 10.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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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준공한 송파성지 아파트가 리모델링을 통해 잠실 더샵 루벤으로 탈바꿈했다. 건물 일부 외벽을 그대로 살려서 현재 일부 벽면에는 ‘성지’ 로고가 선명히 남아있다. 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 제공

서울지하철 8호선 송파역 출구를 빠져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한 눈에도 담기지 않는 ‘헬리오시티’다. 백화점 규모와 맞먹는 상가와 함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눈 앞에 펼쳐진다.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헬리오시티는 기존 134개동 6600가구가 9510가구까지 늘어났다. 늘어난 가구에서 일반분양 물량은 1558가구였다. 전체 가구 수의 16.3%다.

신규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빈 땅에 최대 용적률로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그러나 현재 ‘주택 부족난’을 겪는 도심 지역에는 빈 땅이 없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주택을 도심에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주택을 허물고 더 높은 아파트를 짓는 게 유일하다. 즉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이 도심 주택공급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이 틈새를 파고든 주택공급 방식이 리모델링이다. 리모델링 업계는 그러나 “정부의 8·8 주택공급 대책에서 리모델링은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놓고 리모델링을 통해 공급되는 신규 주택량이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송파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8분을 걸어가면 송파성지아파트 공사현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송파성지는 ㄱ자모양의 2개동이 전부인 298가구 소규모 아파트다. 이 단지는 2020년 전국 최초로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즉 우리나라 ‘수직증축 1호 아파트’다. 수직증축이란 기존 아파트 층수에서 위로 더 올리는 증축방식을 말한다.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 현장 관계자는 “송파성지는 대지면적이 반듯하고, 지반이 풍화암이라 내력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수직 증축이 무리없이 가능한 단지”라며 “여러 요건이 좋아 용적률을 기존 274.2%에서 429.7%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이앤씨는 국내 대형 건설사 가운데 리모델링 사업을 가장 많이 수주한 건설사다.

송파성지에는 수평·수직 리모델링이 모두 적용됐다. 지하로는 1개 층이 더 늘어났으며, 지상으로는 3개 층이 늘어났다. 수평증축으로 각 가구별 실거주면적도 크게 늘어났다. 전용면적만 22㎡가 늘어났고, 발코니 확장에 따라 16.4㎡까지 증가한 면적을 포함하면 각 가구별로 새롭게 가져가는 면적이 38.4㎡까지 늘어났다. 쉽게 말해 25평은 32평이, 30평은 40평이 됐다는 얘기다.

전체 가구수는 수직·수평 증축을 통해 지하 2층~지상 15층, 2개동 298가구에서 지하 3층~지상 18층, 2개동 327가구로 증가했다. 리모델링으로 29가구가 늘어났다는 얘기다.

“리모델링도 도심 주택공급 한 축 충분히 가능”

대단지도 곳곳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리모델링 조합설립까지 완료한 서울 동작구 이수극동·우성2·3단지 아파트는 현재 가구수만 3485가구인 대단지다. 조합설립 전인 신동아4차 아파트까지 포함하면 4397가구에 달한다. 이곳도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용적률 등을 대폭 상향하더라도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거치면 이수극동·우성2·3단지에서만 520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으로 공급된다. 신동아4차까지 포함하면 630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로 봤을 때 리모델링도 도심 주택공급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원식 포스코이앤씨 리모델링 영업실장은 “정책적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예전보다 어려워진 게 현실이지만 정부입장에서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더 효율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패스트트랙을 통해 재건축 사업기간을 줄인다 하더라도 재건축을 통한 공급이 이뤄지기까지는 필요한 절대시간이 분명히 있다. 대단지에서도 리모델링이 점차 진행 중이고, 이 추세대로라면 리모델링을 통한 신규공급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더샵 루벤 조감도. 포스코이앤씨

다음달 입주예정인 포스코이앤씨의 ‘더샵둔촌포레(둔촌현대1차아파트)’도 리모델링을 통해 498가구에서 572가구로 총 74가구가 새로 공급된다. 전체 가구수의 12.9%가 일반분양 물량으로 나오는 셈이다. 이 영업실장은 “재건축 리모델링은 정비사업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제라는 말을 참 많이 하고 다녔다”며 “앞으로 다양한 성공사례가 나와 리모델링 사업도 도시정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리모델링주택조합 협의회(서리협)에 따르면 서울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조합 80곳, 추진위원회 62곳 등 총 142곳(12만가구)이다. 향후 10년간 신규로 공급할 수 있는 주택 수는 약 14만가구(일반분양 2만가구) 수준으로 추정된다.

서정태 서리협 회장은 “리모델링도 수직증축 등을 통해 전체 가구의 15% 가량을 신규주택으로 공급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서 “정부의 정비사업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리모델링도 깊이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 유럽 등 선진국들이 리모델링 활성화에 팔 걷는 이유···탄소 감축

공동주택 리모델링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정비사업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리모델링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할 경우 별도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는 세금 환급, 부동산 보유세 면제 등을 통해 리모델링을 독려한다. 유럽 등 선진국이 리모델링 활성화 정책을 펴는 이유는 리모델링이 재건축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2021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고 ‘2050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공공건축물의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반면 공동주택 정비사업과 관련한 탄소저감은 추진이 더디다. 리모델링이 탄소배출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수없이 나왔지만, 정부가 공급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펴고 수요자들도 재건축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탄소중립 정책에 적합한 건축방식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포스코이앤씨R&D센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후화된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할 경우 난방에너지를 7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건축을 할 때보다 리모델링시 철거 및 시공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재건축 대비 48%까지 저감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모델링은 기존 골조 및 벽채를 최대한 살려둔 상태에서 면적과 층수를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건물을 모두 허무는 재건축에 비해 건축폐기량이 현저히 적게 나온다.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한 단지들을 살펴보면 단지별로 차이는 있으나 기존 골조를 남기는 리모델링 방식이 철거 및 자재생산, 시공단계에서 재건축 대비 43~53%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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