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안전 ‘10분’ 이면 자가진단… ‘중처법 리스크’ 사전에 막는다

정철순 기자 2024. 3. 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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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부 “산업안전 대진단 참여하세요”
올 5인이상 기업 ‘중처법’ 적용
업체들 혼란 최소화 위해 마련
안전보건 등 10개 항목 점검
신호등 3개 색깔로 쉽게 진단
38만개 대상 기업에 집중홍보
“적극 참여로 위험요소 발견을”
지난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육가공 업체 ‘고기나라’ 작업장에서 안전관리 관계자가 시설 장비의 안전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현장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 뼘 높이에서도 추락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산업 현장 안전관리를 맡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감독관들은 이 같은 말을 자주 하며 현장에서의 안전수칙을 강조한다.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올해 1월 충북 지역의 한 마트에서 일하던 근로자 A 씨는 고정 받침대가 아닌 30㎝ 높이의 플라스틱 박스에 올라가 상품진열대 설치 작업을 하던 도중 바닥에 떨어져 사망했다. 현장에서는 ‘30㎝’ 높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작업 도중 미끄럼·낙상은 자칫 심각한 인명 사고로 이어진다. 통상 이런 사고를 ‘비정형(非定型)’ 사고로 분류한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사고인데, 이런 사고까지 막기 위해선 안전수칙 외에는 방법이 없다.

지난 1월 27일 근로자 5인 이상의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법이 시행된 만큼 안전관리 체계가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이번에 법 적용에 포함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 83만7000개소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 대진단’을 강조하고 있다.

◇쉽게 구성된 산업안전 진단으로 참여 유도 = 고용부에 따르면 산업안전 대진단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중 지난 2년간 정부지원사업(안전진단)에 참여하지 않았던 38만 개소를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중대재해 사망자의 60%가 중소기업(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건설·제조업 등 특정 업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큰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취약 사업장의 위험요소를 사전에 확인하게 하고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안전 대진단은 안전보건 경영방침·목표, 인력·예산, 위험성 평가, 근로자 참여, 안전보건관리체계 점검·평가 등 총 10개의 핵심 항목에 대해 온·오프라인으로 자가진단하는 것이며, 최종 진단 결과는 3색 신호등(빨강·노랑·초록)으로 구분된다. 현장에서 만난 관리자들은 정부의 산업안전 대진단 문항을 두고 “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21일 문화일보 취재진이 찾은 인천 서구에 위치한 육가공 업체 ‘고기나라’ 작업장은 10여 명의 근로자가 칼과 골절기를 사용하며 일하고 있었다. 작업장 내 위험한 장비가 많았지만, 업체에서 근무하는 김수진 경영지원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맞춰 자가진단에 참여했고 가장 양호한 ‘초록’ 평가를 받았다”며 “자기진단을 하면서 작업장 내 위험요소를 다시 한 번 환기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산업안전 대진단에 대해 내린 평가 또한 “쉽다”였다. 그는 “‘산업안전’이라고 하면 뭔가 어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막상 진단을 해보면 10분 안에 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다”며 “작업장 내 위험요소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대형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관리는 ‘비용’ 아닌 ‘투자’란 인식 변화 필요 = 해당 작업장은 인천 지역 내 사업장 중 조기에 산업안전 대진단에 참여한 곳이다. 현장에는 모든 작업자가 작업화 위에 덮개를 착용하고 작업 중이었다. 고기 기름으로 인한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용도였다. 김 실장은 “과거에는 발골사들이 베임 사고를 당하면 강력본드를 바르고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져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산업안전 대진단에 참여해 작업장 내 안전을 확인하고 정부의 컨설팅·기술지도·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주변 업체들에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맞춰 소규모 업체들의 인식 개선을 권하고 있다. 특히 사업주뿐 아니라 현장 근로자들이 참여해야 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관리자가 현장을 보는 것과 현장 근로자가 보는 것이 다른 만큼 모든 구성원이 대진단에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다”며 “사업주들은 안전관리에 쓰는 돈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ISO 45000(안전보건표준) 인증 등을 획득하면 오히려 제품의 신뢰성을 높여 ‘투자’가 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일부 소규모 업체가 산업안전 대진단에 소극적인 배경을 ‘페널티에 대한 우려’로 보고 있다. 대진단에 참여하지 않은 경기 부천 지역의 한 사업주는 “자가진단이 쉽다는 말은 들었지만, 괜히 진단을 했다가 위험성이 알려지고 과태료를 내거나 단속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부 관계자는 “자가진단을 해서 위험성이 알려져도 과태료 처분 등의 불이익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번 대진단의 목적이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전반에 대한 위험성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것인 만큼 불이익 없이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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