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10년]⑤ 미분양·고금리 위기 커지는 건설업계… “이러다 줄도산”
10여년전 중견건설사 우수수 쓰러진 악몽 떠올라
건설사 옥죄는 6만 미분양… 증권사에도 여파
‘롯데건설, 태영건설의 부도 이야기가 나오고 (중략) 신용평가사에서 등급을 내리면 절정에 치달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초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던 사설정보지, 일명 찌라시의 한 대목이다. 레고랜드 사태 직후로, 채권시장에서는 ‘롯데건설이 두 자릿수로 회사채를 발행했는데도 소화가 안 됐다’는 말이 횡행했다. 부도설에 시장에선 “설마 대기업 계열사인데....” 하는 분위기였다.
같은달 18일 이후부터 분위기는 반전됐다. 그날 롯데건설은 유상증자를 통해 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이튿날 폭락했다. 이것도 모자라 이틀 뒤인 20일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원을 차입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1월 들어서는 롯데정밀화학과 롯데홈쇼핑으로부터 각각 3000억원과 1000억원을, 하나은행과 SC은행으로부터 총 3500억원을 차입했다. 여기에 잠원동 본사사옥을 담보로 일본 미즈호 은행으로부터 3000억원을 빌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롯데건설의 부도설은 이제 ‘설마’에서 ‘의구심’으로 자리 잡았다. 다행히 롯데건설은 메리츠증권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공동으로 조성해 채권을 매입하기로 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분위기다.
지난해 10대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인허가 문턱이 낮아진 데다 대형사업장이 많았고, 리모델링 시장도 커진 영향이었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한 건설업계는 긴장과 우려가 팽배한 분위기다. 2010년 시공능력평가 40위권 중견건설사들이 연이어 도산했던 악몽이 떠올라서다. 당시 상당수는 흑자도산이었다. 실제로 지방 건설사들 중 벌써 파산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줄도산 악몽 떠올라”… “그때보단 건전해” 의견도
2009~2011년은 건설업계에 흑역사로 기록돼 있다. PF 부실화로 중견건설사들이 맥없이 쓰러진 시기였다. 2009년에는 금호산업과 동문건설, 경남기업이, 2010년에는 벽산건설과 신동아건설, 남광토건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2011년엔 LIG건설, 월드건설, 2012년에는 벽산건설과 남광토건, 삼환기업, 풍림산업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당시 기억을 선명하게 만든 건 지난해 일부 지방 건설사들의 부도 소식이었다. 지난해 9월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우석건설이 부도 처리된 것이 시작이었다. 뒤이어 경남지역 시공능력평가 18위인 동원건설산업도 지난 연말 부도가 났다. 동원건설산업은 대구에 지은 근린생활시설이 대거 미분양되면서 시행사가 파산하며 불이 옮겨붙었다. 동원건설사업은 연 36% 사채까지 동원했으나 22억원짜리 어음을 결제하는 데 실패했다.
대형건설사라고 사정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앞서 찌라시에 실렸던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은 우발채무 규모가 숨통을 조이는 상황이다. 부동산 호황기 공격적인 수주전에 나섰던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는 2020년말 3조6000억원에서 작년 11월 말 6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태영건설은 2019년말 1조8000억원에서 작년 9월말 3조2000억원으로 확대됐다. 3대 신용평가사(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의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일제히 하향했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롯데건설의 등급전망 하향 배경에 대해 “금융시장 경색하에 PF 유동화증권 차환 관련 재무부담이 크게 확대됐다”면서 “PF 우발채무 대응과 향후 감축 규모, 관련 사업 진행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10여년전과 달리 건설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한결 나아져 연이은 부도사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시행사 연대보증과 같은 직접 신용보강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책임준공 수준의 간접 신용보강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책임준공의 이론적 최대손실은 시공비에 국한된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시행사의 신용보강 대부분은 건설사가 지원해 토지비에서 총 사업비까지 연대보증 책임을 졌다”면서 “작년 상반기 4대 건설사의 PF대출 잔액은 3조4000억원으로 2008년 12조8000억원에 비하면 27% 수준에 그치는 등 PF 대출 규모 자체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했다.
◇미분양 6만 육박… 시행사→건설사→증권사 연쇄 충격 가능성도
미분양은 앞으로 건설사들이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분양실적이 나빠지면 사업주체인 시행사가 상환불능에 빠지고, 건설사가 이 차입금을 대위변제하게 되면서 현금흐름에 부담이 생기게 된다. 문제는 분양경기 악화가 장기화될 경우 할인분양 등을 감행하게 돼 사업전반의 수익이 줄고, 최종적으로 유입된 분양대금이 총사업비에 미달하게 되면 건설사의 영업자산에 대한 대손으로 인식될 수 있다.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산업의 여건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문제는 벌써 미분양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분양 위험수위로 전국 6만2000가구를 언급했는데, 11월말 기준 미분양 가구수는 전국 5만8027가구로 벌써 6만가구에 육박했다. 늘어나는 속도도 상당히 가파르다. 한 달 전보다 22.9%(1만810가구) 증가했는데, 미분양이 한 달 새 1만가구 이상 늘어난 건 2015년 12월 이후 6년 11개월 만이다.
지난해 레고랜드발(發) 단기 자금조달 경색 상황에서 PF사태가 일어났다면 올해는 미분양으로 PF시장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그 충격은 건설업계 뿐 아니라 자본시장으로도 전이될 수 있는 상황이다. 과거와 달리 PF사업의 주된 신용보강 주체가 시공사에서 증권사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PF채무 규모는 2013년만 해도 10조원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3월말에는 24조6675억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정부는 지난 3일 서울 강남지역과 용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조정지역에서 해제하고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도 축소하기로 하는 등 미분양 우려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금리인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 기대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불확실하다는 지금의 문제는 외부요인이므로, 그 영향을 규제완화같은 국내 정책으로 상쇄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규제완화는 현시점에서 시장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에 주택 공급 단계부터의 물량 적체를 줄이는 등 수요진작과 전매규제로 막혀있는 판로를 뚫어주는 대책이 마련됐다”면서 “종전 수분양자에게도 소급적용돼 분양권 전매 거래가 서울을 중심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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