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매수심리는 정말 꺾였을까 [부동산360]
집을 팔려는 매도세가 매수세보다 많아져
집 사고 싶은 사람 많아..'잠시 대기 상태'
중개업소, 전문가 대부분 집값 상승 전망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최근 수도권 주택 매수심리가 꺾였다는 보도가 많습니다. 주로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이 매주 발표하는 ‘아파트 수급동향’과 ‘매수우위지수’가 그 근거입니다.
KB국민은행의 10월 세 번째주(18일 기준) 매수우위지수 조사결과는 예상보다 하락폭이 큽니다. 수도권의 경우 91.5로 전주(100.6) 보다 9.1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지난 5월 마지막주(99.0) 이후 19주만에 다시 100 밑으로 빠졌습니다.
매수우위지수가 100 밑으로 하락한 건 의미가 큽니다. 이 지수는 KB국민은행이 회원 중개업소를 상대로 ‘매도자 많음’, ‘매수자 많음’ 중 선택하게 해 작성합니다. 0~200 범위로 100 아래로 하락하면 주택 매물이 집을 사려는 수요보다 많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지난주를 기점으로 수도권엔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아 졌다는 게 KB국민은행 조사 결과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수급동향’도 비슷합니다. 18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수급동향 지표는 104.9로 전월(105.9)보다 1포인트 내려갔습니다. 지난해 10월 마지막주(104.6) 이후 51주 래 가장 낮습니다.
이 지수는 KB국민은행 조사방법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0~200 범위, 100 기준점)한 것이란 점에서 비슷합니다. 조사 방법은 중개업소 설문뿐 아니라 인터넷 매물 건수 등도 함께 분석해 반영합니다.
▶정부 정책에 좌우되는 주택 수요= 주목할 점은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이 두 지수를 ‘매수심리’로 이해한다는 겁니다. 이를 근거로 매수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집값 하락론’의 주요 근거가 됩니다. “매수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으니 집값이 빠질 것”이라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문재인 정부에서 매수우위지수가 가장 낮았던 때는 2019년 상반기입니다. 100 밑이 아니라 50 밑까지 곤두박질했습니다. KB국민은행의 월간 매수우위지수 흐름을 보면 2018년 9월 109.7에서 10월 64.8로 급락합니다. 이후 추가 하락세가 이어져 2019년 4월엔 27.2까지 내려갑니다.
2018년 10월 이후 매수우위지수가 급락한 이유는 누가 봐도 예상 가능합니다. 그해 9월 정부가 발표한 ‘9·13대책’ 때문입니다. 세금, 대출, 청약 등을 총망라한 대책입니다.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올리고, 다주택자에겐 서울 등 주요지역에서 아예 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다주택자를 꽁꽁 묶는 정책이란 평가를 받았던 만큼 주택 수요는 빠르게 위축됐습니다.
문 정부 출범 직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2017년 7월 90.9까지 올랐던 매수우위지수는 8월 8월 74.1, 9월 59.8, 10월 56.8 등으로 빠르게 추락합니다. 문 정부가 출범 후 처음 내놓은 종합 부동산 대책인 ‘8·2대책’이 원인입니다.
사실 이런 패턴은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졌습니다. 최소 26번이나 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일시적으로 주택 수요는 줄었습니다. 그리곤 조금씩 살아나다 다시 또 다른 대책으로 누르는 패턴이 이어졌습니다.
최근 수급지수가 하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4월 말 정부는 DSR(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LTV(주택담보인정비율)도 비주택과 전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 적용시기가 올 하반기부터입니다.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게 더 어려워지면서 최근 주택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겁니다.
▶“집을 사려는 수요 여전히 많아”=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긴 지금부터입니다. ‘아파트 수급동향’과 ‘매수우위지수’ 등 주택 수급관련 지수가 하락하는 걸 ‘매수 심리 위축’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까요? 전 정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수급관련 지수가 하락하는 건 말 그대로 주택 수요가 줄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수요가 주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진짜 매수심리가 악화됐을 수 있습니다.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줄어든 겁니다. 당연히 중개업소를 찾는 매수자들이 감소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정말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줄었을까요? 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9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엔 흥미로운 결과가 있습니다. 전체 152개 기초지자체 거주 66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도권 거주자들에게 주택구입계획을 물었더니 ‘3개월 이내‘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6.6%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2개월 이후’라고 답변한 사람은 77.4%나 됐습니다. 대부분이 당장 집을 살 계획은 없지만, 1년 정도 후엔 사고 싶다는 겁니다. 당장 규제로 집을 살 여력은 못돼도 규제완화 등 상황이 달라지면 집을 사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낸 게 아닐까요?
KB국민은행 조사 자료 중에도 주택 매수심리를 엿볼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매수우위지수가 하락하고 있다고 답변한 중개업자들을 대상으로 이번엔 향후 집값 전망을 물어봤습니다. 9월 수도권 ‘KB부동산매매전망지수’인데 125.9로 나타났습니다. 6월 이후 계속 120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6월 121.3, 7월 125.5, 8월 129.5 등입니다. 이 지표는 0~200 범위에서 100 이상이면 ‘집값 상승’이 ‘집값 하락’ 전망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주택 수요가 줄었다고 답변한 중개업자들이 향후 집값에 대해선 ‘상승’ 쪽 의견이 훨씬 많다는 겁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바로 주택 수요 하락이 정부 정책이라는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대출을 못받게 하고, 세금 부담이 크기 때문에 주택 매수희망자들이 주택 구입을 미루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걸 ‘매수심리 위축’이라고 해석해야할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문재인 정부 내내 수많은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줄곧 상승했습니다. 억지로 누른 수요는 얼마 후 다시 더 크게 튀어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대세입니다. 최근 헤럴드경제가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집값 전망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헤럴드경제가 부동산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2021년 말~2022년 주택시장 전망’을 조사했더니 73.4%(22명)가 서울 아파트값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주택 매수세가 줄어든 건 매수심리 위축이 아니라 ‘잠시 대기 상태’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다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이요. 거기에 내년부턴 새 아파트 입주량이 크게 줄고, 전셋값 폭등이 예고되는 등 집값을 자극할 요인이 더 많아집니다. 주택 매수심리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숨어 있을 뿐입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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