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사업자 덕에..'홍남기식 위로금' 피했다

김태준 2021. 6.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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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과장의 분투기
집 매각 미리 양해 받았지만
세입자 변심에 소송 직전까지
결국 임대사업자 싼매물 구해
세입자 퇴거 후 새주인 입주
홍남기와 달리 위로금 안줘
"與 임대사업자 폐지 난센스"
# 중앙 경제부처 A과장과 아내는 세종의 부부 공무원이다. 최근 아내가 고위공무원단 승진을 앞두자 세를 주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아파트와 실거주하고 있는 세종시 아파트 중 성남시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했고,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기로 구두로 약속했다. 갱신권 문제가 해결된 부부는 이 집을 판교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젊은 신혼부부에게 매도했다.

그러나 그 후 세입자가 말을 바꿨다. A과장은 "갑자기 세입자가 변심해 갱신권을 청구하기로 했다고 전해왔다"며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쥐여줘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종용했지만 너무 화가 나 소송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 기간 종료 6개월 전까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세입자가 계속 거주한다면 이 집을 매수한 신혼부부는 전입이 불가능해져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매수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본인의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를 팔 때 겪었던 사례와 판박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8월 의왕시 아파트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거주 중이던 세입자가 청구권을 행사해 집을 나가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매매 불발 위기에 처한 바 있다. 역시 세입자의 변심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 홍 부총리는 위로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냈다.

홍 부총리와 달리 A과장은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말을 뒤집은 세입자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아서다. 다행히 법원 문턱까지 가기 직전에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보다 못한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에게 임대사업자의 전셋집을 연결해줬고, 세입자가 이 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것이다. A과장은 "내가 협의할 생각이 없자 중개사도 큰일 났다 싶어 세입자가 이사 갈 집을 백방으로 알아봤다"며 "임대사업자 집은 사실상 연간 5% 전세 인상률 상한이 적용돼 성남 지역 전세 시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더라"고 설명했다.

완강히 버티던 세입자가 순순히 이사한 것은 임대사업자 주택에 들어가는 쪽이 조건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최장 8년간 연 5% 이상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는 이 아파트는 보증금이 시세보다 훨씬 저렴했다. 현재 전셋집에서 2년 더 살더라도 어차피 2년 뒤에는 새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고 그땐 전세금 인상을 피할 수 없으니, 세입자 입장에서도 임대사업자 전셋집에 들어갈 수 있을 때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주택자의 숨통을 트여 줄 임대차 매물은 점점 씨가 마르는 상황이다. 갱신권 청구로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 여당은 한 술 더 떠 지난달 말 임대사업자 제도를 전격 폐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2018년 9·13 대책 이후 세제 혜택을 축소하기 시작했고, 작년 7·10 대책 때는 단기 임대(4년)와 아파트 매입 임대(8년) 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자동말소와 자진말소가 증가하면서 현재 남은 등록임대주택은 100만가구로 추정된다.

여기에 여당은 모든 주택 유형의 신규 등록을 받지 않는 한편 자동말소된 임대주택을 6개월 안에 팔지 않을 경우 양도세 혜택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임대사업자들이 매물을 쏟아낼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6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세가 중과됐음에도 이전까지 전혀 매물이 나오지 않은 전례를 비춰봤을 때 여당의 이런 기대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매매시장 안정화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무주택 세입자들만 힘들어지는 꼴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미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탄 사람이 많고, 아직도 다주택자인 사람들은 정말 버틸 만한 사람들"이라며 "임대사업자 물량 대부분이 빌라인지라 매매시장에서 가격 안정화 효과가 크지 않고, 무엇보다 내년 대선까지는 버텨보자는 심리가 강해 당장 매물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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