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2만가구 동시다발 개발..'제2 뉴타운 광풍' 우려
[경향신문]
서울 공공재개발 후보지 가격 상승률 10년 만에 최고치
용적률 완화 ‘개발 호재’ 인식…투기 수요 몰릴 가능성
3분의 2로 낮춘 동의율, 반대하는 주민들 ‘정주권’ 침해
정부는 4일 발표한 공공 주도의 83만여가구 주택공급 대책을 통해 개발이익을 공유하고 투기수요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울에 32만가구가 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펼쳐지면 집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신속 공급’에 방점이 찍히면서 원주민 및 세입자들이 주거지를 떠나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대책이 자칫 ‘제2의 뉴타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2년 추진된 뉴타운 사업은 단기간 내 26개에 이르는 지구를 지정하며 집값이 뜀박질하는 결과를 낳았다.개발이익을 노린 토지 소유주 등이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개발이익을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으로 공유하고 투기수요 차단 대책을 포함했다. 그러나 공공 정비사업이 시장에서 ‘개발 호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도심 내 30만가구 공급은 과거와 비슷한 문제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실제 정부가 지난달 서울지역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8곳을 발표한 이후에 빌라(연립·다세대 주택) 가격 상승률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 전국주택가격동향 조사를 보면 서울지역 빌라 매매값은 지난달보다 0.41% 올라 아파트(0.4%)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특히 구도심과 저층 주거지 다수가 위치한 한강 이북지역에서 연립·단독주택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정부가 공공재개발·재건축 중심으로 한 ‘8·4 공급대책’ 발표 직전인 지난해 7월 대비 지난달 연립주택 매매가격 변동률을 살펴보면, 강북권(1.43%)·동북권(1.61%)·서북권(1.38%)이 강남권(1.28%)·서남권(0.94%) 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랐다. 올해 들어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특단의 공급”을 예고하는 동안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아파트값도 ‘역대 최고’를 갈아치우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동시다발적 개발로 내몰리게 될 세입자의 주거불안도 문제다. 정부는 순환정비 형식으로 개발에 나서고, 세입자를 대상으로 인근 매입임대나 수도권 공공임대 주택을 임시 거주지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건설 후 일부 물량은 재정착 공공임대로 활용하겠다고 했으나 전체 공급물량 70~80%는 공공분양, 나머지는 공공자가·공공임대 혼합으로 공급하기로 해 세입자 지원 물량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뉴타운 사업에서도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난 주택의 50%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권고했으나 세입자를 포함한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해 주거안정 대책이 부족했단 평가를 받았다. 최근 전세난 속에 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가 늘면 또다시 집값 상승 압력이 될 수 있다.
‘빠른 공급’을 위해 인센티브로 내건 용적률 상향은 과밀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업에 따라 최대 700%까지 용적률이 올라가는데, 뉴타운지구 계획 당시엔 평균 용적률 233% 수준에서도 고밀개발 문제가 지적됐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용적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해 인센티브를 이유로 무조건 높이면 안 된다”며 “특히 강북 지역은 과밀화로 생활기반시설 부족, 교통문제 등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분의 2로 낮아진 주민동의율은 해당 지역 주민들 정주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동의율이 낮아도 개발이 진행되면 동의하지 않는 주민들이 타의로 터전을 떠나게 된다. 정부가 토지 수용권을 내세워 ‘빠른 공급’에 집중하는 것보다 주거환경을 면밀히 파악해 주민을 위한 정비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홍 변호사(민변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는 “반대하는 주민에 대해 정부가 토지 수용 형태로 사업 용이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며 “이때 주거 안정을 위협받는 주민 지원방안이나 수용보상금 규모 등 공익적 담보장치는 얼마나 마련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동의율을 낮출 경우 해당 지역에서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간극이 더 벌어진다”며 “부작용을 줄이려면 주거환경의 열악한 정도 등을 따져서 정말 필요한 개발사업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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