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시장 개입인가, 시장 폐기인가
2020년 7월의 마지막 날, 우리 입법 체계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ㆍ월세시장의 질서를 완전히 갈아엎는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하고 국무회의까지 거쳐 공포, 시행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사흘이었다. 독재 시대도 아닌 의회 민주주의 시대에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 이처럼 신속하게 처리된 적은 거의 없다. 무엇이 정부ㆍ여당을 이처럼 다급하게 만든 것일까.
어쩌면 처음부터 이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공급 부족 때문이라면 실수요자가 많이 몰렸겠지요. 무주택자, 1주택자가 집을 산 비율은 마이너스. 어떤 사람들이 증가세를 보였을까요. 집을 3채 이상 가진 사람들." 2017년 6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은 당시 주택시장 동향이다. 그해 상반기 한국감정원의 주택매매가격지수(이 지수는 정부 공식 통계로 김 장관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직접 인용한 통계다)는 97.1에서 98.5로 1.4% 정도 올랐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주택시장에서 급격한 가격 변동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김 장관은 공급 부족이 전 정부 탓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취임사 행간에서는 오히려 '공급은 충분한데 투기 탓에 집값이 오른다'라는 내용이 읽힌다. 왜 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집값 전쟁을 내걸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잇따라 쏟아져 나온 부동산 대책은 자연스럽게 다주택자를 겨냥했다. 대책이 거듭될수록 다주택자가 부담해야 할 주택 보유ㆍ처분 관련 세 부담은 급격히 늘었다. 이를 견디지 못해 다주택자가 집을 처분하면 매물이 늘고 집값이 안정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그런데 대책이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지방 집값까지 들쑤셔놨다. 이 과정에서 젊은 층이 대거 주택 매수에 뛰어들었다. 무섭게 치솟는 집값에 대출이라도 끌어모아 집을 사야 한다는 위기감이 확산한 결과다. 그러자 정부는 무주택 젊은 층의 주택 구매마저 '갭 투자'라며 또 다른 투기 세력으로 지목했다.
최근 정부 정책 당국자들의 입에서는 심심치 않게 "죄송하다"는 말이 나온다. 6ㆍ17 부동산 대책 때까지만 해도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것과는 정반대다. 우연일까. 이때를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급전직하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랐다. 대부분 여론조사는 지지도 하락의 이유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았다.
이때부터 부동산 정책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를 떠올리게 한다. 정책 주도권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금기시되던 백가쟁명식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임대차 3법의 무정차 통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과거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전세 가격 급등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던 법무부, 국토부 등은 침묵했다. 아니, 오히려 이 제도가 불안정한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부동산에 대한 정치권의 표현은 이제 도를 넘어선 모습이다. 이익이 없으면 집을 안 산다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100% 환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집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은 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인구 1300만명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현직 여당 소속 국회의원의 주장이다.
이쯤이면 시장 개입이 아니다. 시장을 폐기해서라도 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노골적인 부동산 정치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렵다.
정두환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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