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공급 또 역행하는 임대차 3법.. "입주절벽 앞두고 꼭 이런 때 해야 하나"

허지윤 기자 2020. 7.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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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계약 기간을 현행 2년에서 '2+2년'으로 갱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임대료를 5%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31일 시행되면서 시장에서는 전세 수급난 등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서울 등 수도권의 ‘입주 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에 시행되다보니 공급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새 아파트의 입주량은 전세 공급을 크게 좌우한다.

31일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이 법안의 주 명분인데, 실제 시장은 애초 의도와 전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상한제 등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전세물량 감소를 심화시켜 전세가격 불안을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미 시장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 전세보증금을 미리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임대차3법이 시행되면 2년만 하려던 전세계약이 임대료도 얼마 못 올리면서 4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최초 전세값을 높게 받으려고 생각하는 임대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집을 아예 비워 두거나 직접 거주하기로 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모두 세입자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입주 물량이 감소하는 시기에 이 정책이 시행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본다. 새 아파트 입주가 늘면 상당수가 전세 물량으로 나오면서 전세공급이 느는 효과가 있다. 전세공급이 늘면 전셋값은 하향 안정된다. 반면 입주물량이 줄면 전세공급이 줄고, 전세금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집값이 크게 오르는 동안에도 전세 시장이 안정됐던 2016~2018년을 보면 공급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본지가 부동산 114을 통해 연간 아파트 입주물량을 집계한 결과 2016년 서울의 입주량은 8만7000가구에 달했으며, 2017년과 2018년 각각 7만5000가구, 7만4000가구로 최근 10년 평균치인 6만2000가구를 넘어섰다.

수도권 입주량도 2016년(25만9000가구), 2017년(28만6000가구), 2018년(31만6000가구) 등으로 모두 10년 평균치인 19만5000가구를 크게 웃돌았다.

이 기간 전세금 흐름을 보면, 한국감정원 통계 기준 2016년 연간 전국 전세가격 상승률은 1.32%로, 전년 상승률(4.85%)과 2011~2015년 평균상승률(5.2%)에 비해 크게 낮았다.

서울과 수도권은 2016년 각각 2%의 상승률을 보였다. 2017년에도 서울의 전세금 상승률은 2%, 수도권은 1.4%에 각각 그쳤다. 입주 물량이 누적되자 2018년에는 서울이 전년 대비 0.25% 오르는 데 그쳤고, 수도권은 전년 대비 1.48% 떨어졌다.

그런데 내년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5021가구로, 올해 4만8567가구(입주 예정 물량 포함)의 절반(51.5%)에 그친다. 경기도의 내년 입주 예정 물량은 9만8112가구로 역시 올해 입주 물량 12만1567가구(예정 포함)의 80% 수준이다. 전세 공급이 크게 줄어들 상황인 것이다.

또 전세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도 문제다. 오른 집값에 강해진 대출규제로 집을 사기 어려워진데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으로 분양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면서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청약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늘고 있다. 공급은 주는데 수요는 느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이 최근 발표한 지난 20일 기준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전주보다 4.4포인트 오른 180.1을 기록해, 전세대란이 발생했던 지난 2015년 11월 9일(183.7) 이후 가장 높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사이로 매기는데, 100을 넘어 높을수록 전세 공급 부족 현상이 심하다는 의미다. 한국감정원 통계로는 이달 2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13.7로 전 주보다 1.6포인트 올랐다. 이는 올해 1월 첫째 주(113.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는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도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대출 및 거래 규제 등을 통한 수요 억제책을 우선시했고 결과적으로 집값은 잡지 못하고 실수요자의 불안을 키웠다. 이는 ‘수요와 공급’ 원칙을 간과한 탓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인데, 임대차 시장에 대해서도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시장에 손을 대면 댈수록 각종 부작용과 주거 불안이 커지는 형국"이라면서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7일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2.53%, 수도권은 3.25% 올랐다. 세종시는 무려 16.36%나 전셋값이 급등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가격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면서 "올해 8월 입주물량이 많지만, 중대형 비중이 비교적 큰 편이고, 9월부터는 입주물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전세시장 안정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내년 아파트 입주물량 감소가 예상되는 서울 등 도심 일부지역은 장기적으로 임대료가 다시 불안해지거나, 세입자를 가려 받는 렌트 컨트롤(rent control) 현상, 아예 빈집으로 두는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차라리 3기신도시 입주 등 대량 입주가 있는 시기에 맞추거나 시장의 왜곡이 있더라도 공급이 늘어 세입자 우위 시장이 됐을 때 임대차3법을 적용·시행하는 편이 나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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