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똘똘한 한 채' 더 쏠리고 지방 '거품' 꺼지면 최악 [이슈&탐사]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중위단위 매매가격은 2017년 5월 ㎡당 667만원에서 1045만2000원으로 56.7% 올랐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239만원에서 256만6000원으로 상승률이 7.4%에 그친다. 다주택 투기세력을 겨냥한 22번의 부동산 대책 결과가 서울과 지방의 자산 가격 양극화 심화로 나타난 것이다.
6·17, 7·10 대책의 효과는 어떨까. 정부는 다주택 투기세력 중 일부에 법인 투자자도 포함된 것으로 봤다. 21, 22번째 대책에 임대사업 법인 혜택 축소,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안이 담긴 이유다.
대책 발표 후 시장에서는 법인을 타깃으로 한 내용이 워낙 강해 매물을 쏟아낼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법인 방식의 부동산 투자는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번 대책으로 향후 부동산 시장에서 법인 수요가 일부 차단되고, 매물도 공급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런데 지방과 서울의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됐다. 물량 폭탄은 풍선 효과로 급등했던 지역에서 먼저 터져나와 거품을 뺄 수 있겠지만 서울은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분위기다.
양지영 부동산 R&C 연구소장은 “앞으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가 더욱 커지면서 지방이 아니라 서울로 투자 자금들이 몰릴 수 있다”며 “결국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격차가 벌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잠긴 매물
2004년 설립된 경북 포항의 제조업체 A사는 2018년 3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한 채를 17억2700만원에 매입했다. 이듬해인 2019년 7월에도 같은 아파트 한 채를 추가 매입했다. 이후 지난 5월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사업 목적에 제조업 외 ‘주택임대업’을 추가했다. 지방의 제조업체가 재건축과 임대사업자 혜택 등을 기대하며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당장 재건축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기대심리로 인해 집값은 계속 올랐고, 임대사업자 혜택이 커 여러모로 ‘손해 볼 것 없는 현금 장사’였다.
서울 서초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태양광 업체 B사도 지난해 9월 은마아파트를 매입했다. 비주거용 건물임대업을 하고 있는 C사는 2016년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3채를 매입했다. 이들은 해당 아파트를 모두 임대 물량으로 돌렸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업체들이 본업을 통한 수입보다 부동산 투자를 통한 이익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16일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법인 임대사업자 소유 매물을 확인한 결과 서울 내 아파트만 6794개(지난 8일 렌트홈 조회 기준)가 등록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임대 매물로 잠겨 있는 법인 아파트는 중구가 1267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구로구(941개), 마포구(794개), 중랑구(562개), 서대문구(540개), 강동구(484개), 노원구(378개) 등 순이었다.
이는 2010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10년간 법인이 개인에게서 사들인 서울 아파트 물량 전체(6585개)보다 많은 숫자. 여기에는 새로 아파트를 지은 뒤 임대 매물로 등록한 허가건설임대사업자 물량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아파트를 사들인 뒤 임대 물량으로 돌린 사례도 상당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6월부터 법인이 개인에게서 사들인 아파트 물량은 2895개다. 이 가운데 강남(297개), 송파(151), 서초(179) 등 강남 3구 물량이 627개로 21.7%를 차지한다. 강남 3구에 등록된 법인 임대사업자 아파트 매물은 506개다.
6·17 대책 이전에 임대 매물 등록을 마친 법인들은 8년 장기 임대등록 시 종합부동산세 비과세 혜택을 여전히 받고 있다. 매물을 내놓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양 소장은 “법인 소유 매물이더라도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다면 임대 의무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장에 풀릴 매물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을 겨냥한 이번 대책이 서울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의 경우 법인 매물을 받으려는 수요가 많아 가격 하락 요인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규제로 법인 매물이 조금 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 현금 부자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며 “강화된 종부세를 감안하더라도 은행보다 이득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법인 규제 강도가 세서 일부는 정리하겠지만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가격이 상승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 아파트에 침투한 법인 자금
“투자자 몇몇이 모여 법인을 세운 다음 정부가 규제하는 바로 옆 지역의 매물을 사들였어요. 규제 지역을 피해 옮겨 다니며 전국을 돌다가 부산 해운대까지 내려갔습니다.” 법인 부동산 투자자를 목격했다는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말이다.
2017년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법인이 개인에게서 사들인 아파트 물량은 4만5807개다. 2010년 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사들인 3만8244개보다 7563개 많다. 법인 매집은 지난해부터 폭발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법인이 사들인 물량만 3만1598개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2006년 이후 법인이 개인 소유 아파트를 사들인 비율은 전체 아파트 거래의 0~2%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2019년 5월 처음으로 3%를 넘어섰고, 지난 3월 6.5%까지 치솟았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현 정부에서 다주택자들이 법인을 통해 규제를 피해간 결과”라며 “정부가 매일 투기꾼을 쫓아가 구멍을 메워도 이 사람들은 또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는 사이 가격만 올랐고, 국민들도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에서 법인은 어디를 주로 샀을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서울이 가장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부산이 3764개로 가장 많고 이어 인천이 3392개로 2위다. 전체 거래에서 법인 매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봐도 서울은 1%에 그친다. 지난 3월 경기도는 2164건을, 인천은 1033건을 기록해 법인 매입이 가장 많았다. 대전·대구·광주 등에서도 지난해 법인의 매입이 일시적으로 집중됐다.
법인 투자의 흐름은 아파트 가격 상승 추이와도 일치했다.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른 지역의 법인 매수세가 강했다. 가격이 오를 만한 곳에 법인 자금이 투입됐고, 분위기를 타면서 아파트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세종시가 대표적이다. 세종시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 2억61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에는 4억5750만원을 기록했다. 10건 미만이던 법인 매입은 2019년 하반기부터 늘기 시작해 지난 2월에는 최고 34건을 기록했다.
이들 물량은 묶여 있을까. 대전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방의 법인 투자는 갭투자 목적이 많았고, 그런 물량은 대개 단타로 치고 빠진다. 4~8년씩 묶이는 임대사업 매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고 겸임교수는 “지방에 단타 치러 들어간 법인 매물들이 빠지면서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큰 폭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벌어지는 자산 격차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 이후 ‘똘똘한 한 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세금과 대출 규제 강도가 커지면서 오히려 시장 트렌드가 투자 가치가 높은 서울 집중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법인의 경우 세금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다주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세금이 오르고 차익 실현이 어렵다면 똘똘한 한 채, 즉 지방이 아닌 서울에 있는 곳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윤 수석연구원도 “결국 시장의 이슈가 다시 서울의 똘똘한 한 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대한 수요가 여전한 상태에서 지방 매물만 급격히 풀리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우려가 커진다. 과하게 올랐던 지방 거품이 꺼지고, 서울 집값은 올라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지방이 얼마나 하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 비하면 (타격이) 클 것 같다. 그런 부작용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윤 수석연구원은 “다주택 법인들이 정리한 매물에서 흘러나온 자금이 서울로 몰리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외곽 지역이 서울보다 타격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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