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든가, 서로 바꿔서 증여하든가" 다주택자 대응 백태
버티거나, 전가할 궁리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다른 방법을 자문 받거나.
7·10 대책이 나오자 다주택자들의 주판알 튕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다주택자와 강남권 고가주택 보유자의 경우 세금 부담이 막대하게 커진 영향이다. 우회로로 꼽히던 부동산 신탁이나 임대사업자 등록, 부동산 매매법인 등록 등의 방법이 모두 막히다 보니 다른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일단 버티면서 상황을 관망하기로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종 세 부담을 다른 곳에 전가할 궁리를 하기도 한다.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14일 복수의 부동산 전문 법무법인과 세무법인 등에 따르면 7·10 대책 이후 다주택자들의 절세 상담 문의가 급증했다. 보험사와 연계해 증여·절세를 전문으로 상담하는 J세무법인 관계자는 "단골 고객인 자산가들의 경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말에도 개인 전화로 상담을 한다"면서 "상담에 나섰던 다주택자의 대부분이 강남 3구에 위치한 주택은 아파트건 빌라건 가리지 않고 서둘러 증여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고 했다.
그는 "증여에 따른 주택 취득세율을 올릴 수 있다는 소식이 나오자 더 서두르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증여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자녀가 만 30세 이상이고 소득 증빙이 가능한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자녀가 아직 어린 경우는 결국 관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녀가 미성년자거나 소득이 없는 경우 증여세까지 부모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증여가 좋은 방안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과거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지난 몇 년새 부동산 투자로 다주택자가 된 한모씨(43)는 "노무현 정부 때에도 주택가격이 급등했다가 한동안 하락했다고 해서, 그 당시 분위기를 익힐 겸 신문 기사를 찾아 읽고 있다"면서 "정책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경험자들이 많은 만큼 2~3년간 어떻게 버텨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서울 내 주택을 일부 정리하고 비조정지역 원룸건물을 통째로 구매해 월세 소득을 극대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다주택 때문에 내게 된 세금을 막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지 않으리란 것에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은마아파트와 서울 송파구의 빌라를 가진 김모씨는 "취득세율이나 양도세율, 종합부동산세율이 일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중구난방 법안이 나온 만큼 어느 정도 손질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세율이 확정되면 다시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일부 자산가들은 교차증여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주택을 증여받을 때 내는 증여 취득세율을 현행 3.5%에서 최대 12%까지 올리는 방안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나온 현상이다. 정부는 다주택 부모가 무주택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는 것을 막고자 주택 수는 가구 합산으로 계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일반 취득세와 달리 증여 취득세는 주택 수에 관계 없이 단일세율을 적용해 왔다.
실제로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세무법인과 함께 교차증여에 대한 세미나를 열겠다는 공지를 주말새 고객들에게 보냈다. 참석하겠다는 응답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양도세와 증여세가 같다면 증여세를 내는 편이 집을 지키는 방법이고, 증여세가 높아 자녀에게 못 준다면 비슷한 상황의 다른 사람을 찾아 교환(교차증여)하면 된다"면서 "중개업소는 거래를 중개하라고 있는 곳이니 상황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영역이 또 생긴 셈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초 사람들이 부동산 매매법인을 잘 모를 때, 법인 설립을 위한 세미나를 세무법인, 법무법인과 함께 여러 차례 했었다"면서 "교차증여를 핵심어로 한 초기 상황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세값이 치솟는 가운데, 상한에 걸린 전월세 가격을 공인중개사 수수료를 통해 일부 보전받는 식이다. 일대 복수의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최근 거래된 서울 서초구 A아파트 전용면적 59㎡짜리 임대사업자 주택의 전세 계약을 하면서 전세입자는 수수료의 최고율을 내고 집을 구했다. 대신 임대인은 수수료의 일부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받았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가격을 통제하려고 들면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상한제 시행이 논란만 만들면서 지연된 감이 있고,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세를 모두 올려 퇴로를 마련해주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주택 시장이 어디로 튈 지 몰라서 나오는 현상"이라면서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 우회로를 찾거나 꼼수를 타진하는 사람이 계속 늘 것"이라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몇년간 주택 가격이 끝없이 오르고 대출 사다리가 끊기면서 더 이상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인식이 생겨 나온 부작용"이라면서 "조급증과 불안심리가 뒤섞인 상태에 나오는 반응인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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