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위축 우려 속 강행하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집값 잡기 어려워"
정부가 22일 국무회의에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의결하며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집값을 잡으려는 조처인데 시행 방침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집값 상승세를 오히려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여럿 나왔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위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달 말 공포돼 시행될 예정이다.
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무엇인가.
분양가를 택지비에 건축비를 더한 금액 이하로 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급하는 공공택지에 집을 지을때만 적용됐다. 앞으로는 재개발과 재건축 등을 위해 민간에서 조성한 택지에 집을 지어도 이런 제한을 두게 됐다.
일각에서는 분양가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면 아파트를 고급스럽게 짓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품질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분양가와 택지비에 더할 수 있는 이른바 ‘가산비’라는 것을 통해 개별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할 길이 열려있다는 것.
정부는 과거 강남 지역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고 지은 아파트 단지들이 고급으로 건설됐다는 예를 들기도 했다.
② 갑자기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3기신도시 조성 등 정부가 2년 동안 여러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는데도 집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의 주간아파트가격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해 11월 둘째 주부터 32주 연속 내리다 올해 7월 초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 10월 둘째 주 현재 16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 집값 상승세가 잡힐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논리는 이렇다. 분양가가 오르면 수요가 기존 주택으로 이동하고, 이 여파로 기존 주택 값이 덩달아 오르면서 다시 분양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벌어지는데, 이 고리 중 한 곳을 끊으면 자연스레 집값이 잡힌다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분양가 상한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2007~2014년 집값이 안정됐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집값이 잡히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많다.
③ 그동안은 재건축 단지가 분양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나?
아니다. 주택을 분양하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데, 이미 HUG는 서울과 경기 과천·분당 등 전국 34곳 '고(高)분양가 관리지역'의 분양가 상한 기준을 세우고 통제하고 있었다.
△인근에 최근 1년 이내 분양한 아파트가 있을 때 그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을 수 없고 △분양 후 1년 이상 지난 아파트만 있을 땐 해당 아파트 분양가에 시세 상승률을 반영하되, 상승률은 최대 5%까지만 적용하고 △이미 준공한 아파트만 있을 경우 주변 아파트 평균 매매가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기준이었다.
여기에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분양가가 책정되는 걸 통제했다. 최근에도 경기도 고양 능곡1구역 재개발 조합이 고양시청에 입주자 모집 공고를 승인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시청이 일반분양가가 높다며 이를 반려한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HUG와 지자체의 분양가 통제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는 것이 추가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④ 어떤 지역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나
개정된 주택법 시행령에는 투기과열지구 중 △직전 1년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곳 △직전 2개월 모두 평균 청약률이 5대 1 이상인 곳 △직전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증가한 곳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일단 적용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현재 서울의 모든 자치구가 이 요건을 채운 상태다.
다만 정량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지역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주거정책심의회를 통해 실제 시행할 지역을 정할 예정이다. 특히 정부는 ‘구(區)’ 단위가 아닌 ‘동(洞)’ 단위로 상한제 대상 지역을 핀셋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우선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이른바 ‘강남4구’와 마포, 용산, 성동 등 집값이 많이 뛴 지역을 중심으로 상한제가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새 아파트 공급이 많이 남은 서대문구와 동작구, 종로구 등도 상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⑤ 상한제를 적용받는 정비사업장은 얼마나 되나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의 경우 개정된 주택법 시행령이 시행되기 전까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단지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 모두 시행령 시행 후 6개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상한제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최초 입주자모집승인을 신청한 단지부터 상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원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도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준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크게 기본계획수립 → 정비구역지정 → 조합설립인가 → 사업시행인가 → 관리처분인가 → 철거와 이주 → 일반분양 → 준공인가 순으로 진행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서울시에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총 381곳이다. 이중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은 66곳, 6만8000가구, 착공 단계인 곳은 85곳, 6만9000가구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6개월 안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정비구역 지정부터 사업시행인가 단계에 있는 나머지 230곳, 15만7000가구는 상한제 적용 대상이 된다.
⑥ 언제부터 분양가에 영향을 주나
정부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상한제를 심의·의결하면서 이르면 내달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면 대통령 재가 이후 상한제가 공포·시행된다.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도 실제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의견은 분분하다. 제도를 실제 시행할 정도로 집값이 심각하게 오르는지를 봐야 하고, 경기 사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건설투자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것도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주택시장 안정과 경기 활성화 지연이라는 양면을 가진 일이다 보니 관련 부처 입장도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기획재정부는 경기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⑦ 집값 상승세는 잡힐까?
정부와 민간 전문가의 입장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정부는 과거 상한제를 시행했던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 집값이 안정됐고, 분양가 규제가 자율화된 2015년 이후 시장이 과열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한제로 실수요자가 부담 가능한 수준의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하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상한제를 시행하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연간 1.1%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국토연구원의 분석도 정부 논리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 안정 효과가 있더라도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상한제로 새 집 공급이 줄어들면서 주택시장 수급 균형을 깬다는 이유에서다.
빈 땅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서울에 새 집을 지으려면 기존 노후 주택을 재개발하거나 재건축하는 정비사업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양가가 싸지면 사업성이 낮아지며 정비사업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급이 부족해지고 집값이 오히려 더 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2015년 이후 시장이 과열된 것도 상한제로 새 집 공급이 움츠러들었던 탓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상한제가 시행되면 조합 부담이 늘어나 재건축·재개발을 하는 메리트(이점)가 줄기 때문에 사업을 보류하거나 연기하는 곳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이렇게 되면 시장에 공급 축소 신호가 생길 것이며,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동 단위로 규제지역을 좁히면서 수요자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수분양자가 낮은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 즉 프리미엄(웃돈)을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집값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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