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주택시장⑤]성행하는 묻지마 청약..'폭탄돌리기' 심화
(서울=뉴스1) 오경묵 기자 = "강남권을 규제하면 그쪽으로 몰렸던 여윳돈이 동탄2와 같은 상품성이 좋은 신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죠. 강남과 달리 아직 오를 여력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가 많아서 모델하우스를 보지도 않고 청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A공인중개업소)
"남들이 하니까, 비용 부담이 크지 않아서…. 이런 이유로 청약하시는 분들이 많죠. 당첨됐는데 로열층·로열동이 아니면 포기하면 되고요. 가족 명의 통장으로 해도 되고, 1년이면 다시 1순위 자격이 생기는데 거리낄 게 없죠."(동탄2신도시 분양권 거래업자)
서울 강북과 수도권 신도시 분양시장이 뜨겁다. 정부가 강남권 규제 신호를 보낸 이후 강남권은 관망하는 분위기지만 갈 곳을 잃은 여윳돈들은 강북과 수도권 신도시로 퍼지고 있다.
특히 웃돈을 노린 묻지마 청약이 늘고 있다. 이달 분양한 일부 단지에는 4만~5만개의 1순위 청약통장이 몰려들었고 동탄2신도시에는 10만명이 넘게 청약하기도 했다.
◇이달만 동탄2에 1순위 12만명 몰려…'묻지마' 열풍 이달 26일까지 서울에는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27가구)·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1376가구)·성북구 장위동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615가구)·마포구 망원동 마포한강 아이파크(140가구)·마포구 신수동 신촌숲 아이파크(390가구) 등 총 5개 단지가 공급됐다. 5개 단지를 합해 2548가구에 불과하지만 1순위 청약자만 8만3364명이었다. 경쟁률만 놓고 보면 32.2대 1이다.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신도시도 비슷하다. 다산·동탄2·송도·안산 등에 이달에만 20만명이 넘는 1순위 청약자가 몰렸다. 특히 동탄2신도시는 3개 단지(5개 블록)·3020가구 모집에 11만9946명이 청약을 접수했다. 동탄 더샵 레이크에듀타운에는 무려 5만2208명이 1순위로 청약을 넣었다.
지방에서 가장 청약 열기가 뜨거운 시장으로 꼽히는 부산도 부산아시아드 코오롱 하늘채(446가구) 1개 단지에만 무려 13만2407개의 1순위 청약통장이 모여들었다.
이 같은 청약결과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기 수요가 몰려든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수도권에서 분양을 진행한 한 단지의 관계자는 "당첨만 되면 앉은 자리에서 수천만원의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다"며 "당첨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잃을 게 없으니 모델하우스에 가보지도 않고 청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보다는 수도권 신도시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동탄 더샵 레이크에듀타운(1036가구)의 경우 1순위 당해 청약자가 1만6550명인데 비해 기타 지역의 1순위 청약자는 3만5658명으로 2배를 훌쩍 넘었다. 동탄2신도시 사랑으로 부영 역시 3개 블록(1877가구)을 합해 총 6만5806명이 청약했는데 1순위 당해 청약자는 30% 수준인 2만194명에 불과했다.
시장 예측과 달리 상당히 높은 경쟁률로 1순위 마감에 성공한 의왕 백운밸리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역시 1순위 당해 청약자는 5051명뿐이지만 기타지역 청약자가 1만1800명으로 2배 이상이었다.
동탄2신도시 W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청약하는 이들 가운데 70% 이상이 투자 목적으로 하는 외지인들"이라며 "실수요자는 많지 않고 투자자만 몰리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114의 자료를 살펴보면 2008년 1~10월 전국 아파트 청약경쟁률은 1.16대 1에 불과했다. 2013년까지 1.3대 1에서 3.2대 1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던 평균 청약경쟁률은 2014년 들어 5.15대 1로 급등한다. 이어 지난해에는 11.15대 1로 2배 이상 뛰었고 올해는 13.91대 1까지 상승했다.
분양물량을 살펴보면 2008~2010년에는 6만가구에서 8만가구 수준에 불과하다. 2011~2013년은 11만~13만가구까지 물량이 늘었으나 수요 역시 늘어 평균 청약경쟁률도 제자리 걸음을 한다. 2014년 이후에는 분양물량이 17만~26만가구로 늘었지만 수요 역시 폭증해 경쟁률도 급등한다. 2014년 이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2% 초반대로 떨어지는 등 저금리 기조가 강해지면서 갈 곳을 잃은 여윳돈이 분양시장으로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폭증하는 분양권 전매…부추기는 건설사·뒷짐진 정부 '묻지마 청약 '이 늘다보니 분양권 전매 거래도 폭증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현아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분양권 전매거래는 총 10만7395건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0년 이후 최고치였던 지난해(14만9345건)를 무난하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0년(3만3826건)과 비교하면 5배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 모두 뒷짐진 상황이다. 건설업계는 분양권 전매를 겨냥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혜택을 도입하고 청약경쟁률을 높이기 위해 '쪼개기 청약'을 실시한다.
쪼개기 청약은 동탄2신도시 부영 사랑으로나 의왕 백운밸리 효성해링턴플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6일 청약을 받은 동탄2 부영 사랑으로는 3개 블록으로 나눠 청약을 받았지만 당첨자는 각각 다른 날짜에 발표했다. 하나의 통장으로 세 번의 청약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의왕 백운밸리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역시 1631가구 규모임에도 4개 블록으로 나눠 청약을 실시했다.
최근 안산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 단지는 전매제한 기간이 지난 뒤 1차 중도금을 내는 안심전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수도권 민간택지의 경우 6개월의 전매제한 기간이 있고 이 기간동안 2~3회의 중도금을 납부한다.
이 단지의 경우 초기 계약금도 통상적으로 책정되는 분양가의 10%가 아닌 500만원 정액제를 채택했다. 500만원만 있으면 분양권을 쥐고 있다가 중도금 이자 부담 없이 전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분양권 불법전매도 문제다. 정부는 지난여름부터 다운계약 등 분양권 불법거래를 단속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크지 않다. 단속이 강해지자 다운계약 대신 양도세를 매수자가 부담하게 하는 변형 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집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청약을 하는 이들이 많은 현 상황은 과열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 깡통주택이나 깡통전세가 늘어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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