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타깃 규제]시장만 들여다보고 있는 정부..불확실성 키운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정부는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단계적·선별적인 시장 안정 시책을 강구해 나갈 계획이지만 부동산 대책의 추진 여부 및 시기,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진 바 없다.”
지난주 정부가 서울 강남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 후 국토교통부에서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부의 이 입장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일부 매체에서 국토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부동산 대책 발표 시기를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점치고 있지만, 국토부는 “대책의 추진 여부와 시기 등은 전혀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자 시장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해 들어 아파트값이 치솟았던 강남 재건축시장은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섰다. 거래가 끊긴 가운데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도 하락세다. 정부가 실제 어떤 규제책을 내놓기까지 잠시 쉬어가자는 분위기다. 반대로 서울 강북권과 수도권 주요 지역 주택시장은 반사이익을 보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던지 아니면 시장에 맡기겠다고 하던지 뭔가 입장을 정해줘야 하는데 시장을 들여다보고만 있다고 하는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정부가 규제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 시장의 열기를 식히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규체책을 내놓지 않고 흐지부지 지나가면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시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규제에 나서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 연장이나 재당첨 제한, 청약 1순위 자격 강화 등은 관련 법의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최소 1~2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주택시장 비수기인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나 돼야 규제가 시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내년은 입주 물량이 많아 시장 침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규제책이 오히려 부동산시장 전체를 얼어붙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풍선효과는 일시적 현상으로 그친 경우가 많다”며 “실제 규제가 나오면 투자 심리가 위축돼 비강남권도 강남처럼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성장률에서 건설부동산 분야의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수 있는 카드를 꺼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3%이며, 이 중 건설투자 기여도가 51.5%(1.7%p)를 차지해 1993년 4분기 이후 최고치 기록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부동산시장을 잘못 건드렸다가 전체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년에는 경기 침체에 2~3년간 이뤄진 주택 공급 과잉 여파 등이 겹치면서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정부가 이번에 규제 카드를 꺼내들 경우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집값이 폭락해 하우스푸어를 대거 양산하는 등 큰 부작용을 초래한 사태가 재현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현 (ey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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