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효자에서 천덕꾸러기 전락한 '건설'
건설·부동산 경기침체에 건설사를 계열사로 둔 모기업들과 해당 건설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때 그룹별로 '자금줄' 역할을 했던 대기업 계열 건설업체들이 이젠 그룹에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건설 계열사를 보유한 각 그룹은 경영위기에 빠진 해당 계열사를 보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자금을 수혈하고 대규모 인사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날 기미가 없는 건설경기 탓에 도움의 손길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상황은 녹록지 않다. SK, GS, 두산, 한라, 동부건설 등이 그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인 건설업황 부진으로 매출은 '제자리 걸음'인 데다 금융이자 증가, 아파트 할인 분양 등으로 재무 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
◆ 계륵 같은 건설사…어쩔수 없는 지원
2013년 조 단위의 실적 쇼크는 GS건설이 테이프를 끊었다. GS건설은 2013년 1분기에 535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적자행진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2분기 1503억원, 3분기 104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한해 누적적자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부실책임을 지고 오너 일가인 허명수 사장이 지난 6월 대표이사직을 내놨지만 신임 임병용 사장이 취임한 후에도 적자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GS그룹은 GS건설을 살리기 위해 서울 강남구 소재 인터컨티넨탈호텔을 담보로 자산유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3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갈수록 어려운 모습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실적이 악화되면서 3분기까지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분기에만 7468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다. 마침내 삼성그룹은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삼성전자 혁신전문가들을 긴급 투입했다. 지난해 10월 중순 정진동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20여명을 삼성엔지니어링 '경영 선진화 태스크포스'에 합류시켰다.
SK건설은 해외 플랜트사업에서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고 국내 주택사업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며 2013년 3분기까지 2855억원의 누적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K그룹은 결국 강수를 뒀다. 최창원 SK건설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각 계열사를 통해 4800억원을 지원키로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두산건설도 지난 3년 동안 두산그룹의 유동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안정성 있는 토목을 대신해 200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것이 분양시장 침체와 맞물려 회사 재무구조를 흔들었다. 두산그룹은 2010년 11월에 두산건설에 두산메카텍을 합병시키고 2011년 5월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0억원 발행했다. 그해 6월에는 300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등을 실시했지만 정상화를 이루지 못했다. 두산은 급기야 지난해 4월 또다시 유상증자와 사업부 출자 등으로 약 1조원에 달하는 지원책을 내놓아야 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룹 차원에서 두산건설에 모두 2조4800억원의 자금을 수혈한 것이다.
이처럼 각 그룹은 대대적인 자금 지원과 인사 개편 등을 통해 건설 계열사의 경영위기를 타개하려고 하지만, 건설경기 자체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지원이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건설사 경영난의 원인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공공공사 발주 감소와 민관 합동 개발사업 실패, 민간공사 위축과 건설 부동산 관련 규제, 무리한 해외 플랜트 사업 진행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국내 건설 수주액의 급감이 위기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9월 국내 건설 수주액(누적)은 59조115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9%나 줄었다. 이는 2004년(58조8000억원)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3분기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6100가구로 2분기보다 1000가구 이상 늘어나는 등 국내시장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 건설계열사 지원에 모기업도 '휘청'
일부에선 건설사 지원에 나섰던 그룹이 부실로 빠진 사례가 적지 않아 최악의 사태 발생 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극동건설 인수와 지원으로 위기에 빠진 웅진그룹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웅진은 2007년 8월 6600억원을 투입해 극동건설을 인수했지만 이후 극동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44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직접 지원했다. 이는 웅진그룹에 유동성 위기를 야기시켰고 결국 웅진홀딩스마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범 현대가(家)의 일원인 한라그룹도 건설사 부실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한라건설(현 한라)이 부실화되자 우량 계열사인 만도를 통해 유상증자(3500억원)를 지원한 것이 기관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한라그룹의 지배구조는 정몽원 회장 일가→한라→만도→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로 형성돼 있다. 한라건설이 무너질 경우 그룹 지배구조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로 만도를 동원한 것이 지탄을 받은 원인이었다.
최근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을 매각하기로 한 LIG그룹도 부실 원인이 건설 계열사에 있다. LIG그룹은 건설업 진출을 위해 2007년 건영(LIG건설)을 인수했지만 2011년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세가 됐다.
이 과정에서 LIG그룹은 5000억원가량의 채무을 떠안았고 이를 CP(기업어음) 등으로 돌리다 사기 혐의로 투자자들에 제소돼 오너 일가가 구속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오너일가가 손보사를 팔아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기로 하면서 그룹은 사실상 해체되는 신세로 내몰렸다.
이처럼 건설경기 장기 침체에 따른 건설사들의 부실이 가속화하면서 건설계열사를 둔 그룹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건설사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은 건설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이상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계열건설사에 대한 자금지원이 우량 자회사는 물론 그룹 전체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 제3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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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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