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빚 내서 집 사라는데..세입자 91.2%는 "올해 안 사"

정명원 기자 2013. 8. 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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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8.28 전월세 대책은 예고된 대로 당장 급한 가을 전세대란에 도움을 주는 내용이 아니라 사실상 부동산 매매 거래 활성화 대책이었습니다. 부동산 매매가 활성화되면 전세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이번에도 작용했습니다. 부동산 침체 속에 집은 안 사고 전세를 선호하면서 전셋값이 뛰기 시작한 2009년부터 20번 이상 내놓은 대책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한 마디로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 줄 테니 집을 사라는 겁니다.

부동산 급등시기에 도입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지난 4.1 대책 기조를 이어가는 겁니다. 당시 4.1대책도 발표 당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지만 반짝 반응 뒤 다시 시들어버렸는데 일부에선 국회 통과 지연을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사실은 실수요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새롭게 내놓은 대책은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겠다는 것과 국민주택기금에서 서민의 주택구입자금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 그리고 '수익 공유형 모기지'와 '손익 공유형 모기지'입니다. 국민주택기금에서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대 저금리로 20년 정도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수익이 나면 집 주인과 나눠 갖고 손실이 생기면 집 주인이 떠 앉는 구조이거나 수익과 손실을 정부와 집 주인이 나눠 갖는 구조인데 이 제도가 지탱되려면 앞으로 집 값이 크게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워낙 이자가 싸기 때문에 원래 집을 사려고 계획했던 분들 중 조건이 맞는 분들이라면 나쁘지 않은 제도입니다.

하지만 3천 가구 정도 밖에 안 되는 대상 가구를 감안하면 이 제도가 당장 가을 전세대란 해결책이나 전월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향후 집 값에 대해 시장에 시그널을 주려는 의도가 강한 대책으로 보입니다. 어떻게든 매매를 활성화 시키고 싶어하는 겁니다. 이번에도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이 대책이 전세대란 해소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견본주택이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다며 "이제는 집을 살 때"라는 기사를 쓰는 일부 언론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집을 살 계획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실수요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SBS<현장21>이 정부의 대책발표를 앞두고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동산 정책 국민인식 여론조사를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를 하면서 응답자 중 집 주인과 세입자를 구별할 수 있도록 했는데 세입자 중 올해 안에 집을 살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의 91.2%는 집을 살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사는 투자자들은 그 자산이 앞으로 오를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집 값이 의미 있게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실제 앞으로 집 값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응답이 41.3%로 가장 많았습니다. 집 주인 중 42.3%, 세입자는 38.6%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더 오를 것이란 응답은 27.5%, 더 내릴 것이란 응답은 27%로 오차범위 내에서 같았는데 집 주인은 더 오를 것이란 응답이 약간 많았고(더 오를 것 26.6%, 더 내릴 것 25.5%), 세입자는 더 내릴 것이란 응답이 더 많았습니다.(더 내릴 것 30.9%, 더 오를 것 28.9%)

조사 내용 중에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전월세 비용 부담 증가로 인해 세입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월세 비용 부담과 전세자금대출이자 때문에 최근 소비를 줄였다고 응답한 세입자가 63.4%로 10명 중 6명이나 됐습니다. 줄인 적이 없다는 응답은 34.6%였습니다. 이미 빚 권하는 주택정책 때문에 주택관련 대출 증가로 올해 1분기에만 가계부채가 16조9천억원이나 늘었습니다. 가계부채가 980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로 올라선 상황에서 소비 감소로 인한 내수 위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 경제가 수출위주 경제지만 수출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내수까지 위축되면 저성장이 길어질 수 있고 경제가 저성장인데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반면 급증하는 가계 부채가 빚 권하는 주택 정책 속에 더 늘어나게 되면 금융시스템에는 더욱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가격은 올리지 못하고 빚만 늘리고 소비 위축을 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세대란 대책과 관해 어떤 생각인지도 물었습니다. 우선 취득세 인하, 다주택자 규제 완화를 통해 전세가격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정책에 대해선 47.3%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고, 45.9%는 효과 없을 것으로 응답해 오차범위 안에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대해선 찬성이 76.5%, 반대가 18.9%로 나타났는데 의외로 주인의 73.4%도 찬성한다고 응답했습니다.(세입자는 82.5%가 찬성) 최근 실시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에 관해선 찬성이 61%, 반대가 32.9%였는데 실제로 세입자를 대신해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겠다는 집 주인은 36% 뿐 이었고, 집 주인에게 대출을 부탁하겠다는 세입자도 41.1%였습니다.

이번 조사는 SBS <현장21>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CATI를 활용한 집 전화와 휴대전화 RDD을 절반씩 활용해 22일과 23일 이틀 동안 실시했으며95% 신뢰수준에 허용오차는 플러스 마이너스 3.5%P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전셋값 폭등 속에 세입자에게 다가오는 위험요인들과 세입자 보호를 위해 시급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정명원 기자 cooldud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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