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안 드는 전세' 첫날 '썰렁'.. "집주인 싫어해"
[오마이뉴스 신원경,유정아,김시연 기자]
'목돈 안 드는 전세' 출시 첫날 시중은행 분위기는 썰렁했다. 출시 첫날이어서 홍보가 안 된 탓도 있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업계에서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신한·우리·하나·기업·국민 등 6개 시중은행이 23일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렌트 푸어' 대책 가운데 하나인 '목돈 안 드는 전세2' 대출 상품을 일제히 출시했다.
흔히 알려진 '목돈 안 드는 전세1'(집주인 담보 대출 방식) 상품은 오는 9월 출시 예정이고 이날 선보인 건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 양도 방식'이다. 세입자가 임대주택에 부실이 발생했을 때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은행에 넘기는 대신 기존 전세자금대출보다 대출 한도가 늘어나고 금리가 조금 낮은 게 특징이다. 결국 임차보증금을 담보로 세입자를 신용도를 높이자는 취지지만 자칫 임대주택이 빚 때문에 경매에 넘어갈 경우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한도 높고 금리 낮지만 큰 차별성 없어... 집주인 동의서도 걸림돌"
이날 낮 직장인이 많은 서울 종로 일대와 주거지역인 상암동 일대를 다녀봤다. 상품 출시 첫날인 탓인지 막상 '목돈 안 드는 전세' 상품을 찾는 세입자를 찾기 어려웠다.
우리은행 한 지점 대출 담당자는 "문의 전화가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직접 점포로 찾아오거나 신청한 고객은 없었다"고 밝혔고, 신한은행 지점 대출 담당자 역시 "우리도 오전에 연수를 받았다"며 "오늘 들어온 상담은 한 건도 게 없다"고 밝혔다.
농협·국민·기업 등 다른 은행 지점 사정도 비슷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우리 은행은 26일 상품 출시 예정이라 명확한 지침이 내려온 것이 없다"며 "2~3주 뒤에 오면 자세히 상담해 줄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기존 전세대출상품과 차별성 부족과 '채권 양수도 동의서'를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금리가 낮은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대출을 선호하는데 이번 상품은 대출 한도가 늘어나고 금리가 조금 안정된 것 외에는 기존 상품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대출 담당자는 "이번 상품은 일반 전세 대출보다 한도가 높은 편이지만 소득과 주거 상태·재직 기간 등에 따라 한도가 다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대출 제도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목돈 안 드는 전세' 금리는 3.60~4.95%로 일반 전세자금대출보다 0.5%포인트 정도 낮고 대출 한도도 2억6600만 원에 이른지만 대상은 세대주 가계의 연소득이 6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여야 하고, 전세보증금도 3억 원 이하(수도권 기준, 지방은 2억 원 이하)로 제한된다. 결정적으로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은행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채권 양도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요즘 이사철이라 전세 대출에 관한 문의는 꾸준한 편이지만 최근 전세 매물이 거의 없고 집주인들이 '목돈 안 드는 전세'를 꺼리다 보니 취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대개 중간에 은행을 끼고 채권 양도를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세입자가 동의서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채권 양도를 하지 않고도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는 많을 텐데 굳이 은행을 중간에 두는 부담을 안으려는 집주인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전세값 상승에 기름 부은 격... '깡통 전세'만 더 늘어날 것"
▲ "목돈 안드는 전세'는 폭탄 안겨주는 것"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신규 전세대출 확대안을 비판 및 제대로 된 전월세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가 치솟는 전월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이날 오후 3시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전월세대책 간담회에서도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장병완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우원식 최고위원을 만난 전국세입자협회·금융정의연대·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이번 제도가 전세보증금 상승세에 기름을 붓는 '헛대책'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전날 오전에도 청와대와 가까운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목돈 안드는 전세 제도는 은행만 배를 불리게 한다"며 "전월세난을 해결하려면 임차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중소형 공공임대 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금융정의연대 상임이사)는 이날 "'목돈 안드는 전세'는 세입자가 돈 빌려서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대로 올려주고 그러다 전세자금 떼여도 모르겠다는 것"이라며 "'깡통전세'(집주인 빚과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많아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보증금을 건질 수 없는 전세)가 지금도 19만 호인데 전세금이 올라가면 깡통전세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윤경 대표는 "현재 가계대출은 심각한 수준이고 주택담보대출에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하면 실제 주택가격 대비 부채 비율(LTV)은 71%를 넘는다"며 "목돈 안 드는 전세로 전세보증금 대출이 증가하면 주택가격 하락시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져 금융 위기와 부동산시장 후폭풍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바꿔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금융기관에게 채권 양수도 계약 등을 통해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양도할 수 있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했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세입자들에게 전월세 보증금은 최후의 보루였는데 앞으로는 보증금도 못 받고 길거리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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