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한여름에도 번지는 '전셋값 공포'.. 혼란 키우는 경제팀
이사철도 아닌 한여름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은 지난 7월 아파트 전세금이 전월 대비 평균 0.64% 올랐다. 올해 들어 월간 최고 상승률이다. 봄 이사철인 3~5월보다 전세금이 더 많이 올라 비수기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작년만 해도 7월에는 전세금이 전월 대비 평균 0.05% 떨어지는 등 비수기 영향이 뚜렷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서울 강남권의 대표적 고가 아파트 중 하나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는 전용 84㎡ 전세금 호가(呼價·부르는 값)가 7월 말 9억4000만원으로 3개월 만에 9000만원가량 오르는 사례도 나왔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세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강남구에서 전용 115㎡ 아파트 전세 재계약을 한 김모(48)씨도 이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2년 전보다 전세금이 5000만원 오른 9억5000만원에 재계약을 했는데, 알고 보니 집주인이 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 4억3000만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14억원 선인데, 전세금과 대출금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올여름 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은행에 맡기고 챙길 수 있는 금융 이자가 줄면서, 전세 대신 임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월세로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요자들은 매달 월세를 내는 게 부담스러워 전세만 찾고 있는 상태다. 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아 주택 구매보다 전세에 머물려는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거래를 활성화해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금이 집값의 70%에 육박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비싼 전세를 살 바에야 내 집을 마련하는 쪽으로 결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이런 요구에도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부 경제팀은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래 절벽'을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꺼낸 취득세 영구 인하 카드가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22일 "취득세 인하 방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전세난, 거래 절벽 등 시장 상황이 악화하는데 아직까지 세부적 인하 방안과 인하한 취득세율 적용 시점, 소급 적용 여부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 전문위원은 "취득세 인하안 확정까지 시간이 걸리면 가을 이사철도 거래 침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번번이 실패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2009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이런 법안 폐지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국회가 열릴 때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야당에서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며 국회 탓만 해왔다. 최근에야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절충안 찾기에 나섰다.
정부는 부작용이 많다고 보는 전월세 상한제를 빼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뉴타운 매몰 비용 처리 지원 법안을 일대일로 묶어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진흥실장은 "정부가 총력을 다해 각종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하반기 이후 시장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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